뉴스
사람/사람들
[한철수가 만난 사람(6)] ‘운명을 여는 지혜’ 의 작가...자운 이한국
30년간 30만 명 인연의 끈...방송을 통해 능력이 알려져
기사입력: 2016/06/19 [05:20]  최종편집: ⓒ 경기인터넷뉴스
한철수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철수가 만난 사람(6)] ‘운명을 여는 지혜’ 의 작가...자운 이한국 
 
-3대가 유학자이자 명리학자...8세에 유학의 길, 18세부터 수행자의 삶
-30년 넘도록 신촌에서 기도하고 30만 명과 인연을 맺고 나눈 이야기
-삶의 갈림길에 있을 때 두고, 책장을 넘기면 그 열쇠를 찾을 수 있어
-운(運)이 길어야 명(命)을 받치고, 지혜(知慧)는 깊어야 깨달음이 열려

 
사람의 운명은 '천성이냐 개척이냐' 누구나의 관심사이다. 운은 무엇이고 명은 무엇인가. 때로는 하늘에, 때로는 조상을, 때로는 부모를, 혹은 세상을 원망하며 길한 것은 자신의 탓, 흉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인간사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걸고 무엇인가에 구복(求福)을 한다. 인생과 운명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길라잡이이자 나침판과 같은 책 "운명을 여는 지혜"가 지난달 지난 5월 22일 출간됐다.
 
▲ 자운 이한국 역술가는  8세때 한학에 입문하여 사서삼경, 한의학, 역학, 성명학, 관상학, 주역 · 육효, 수상학, 풍수지리학을 두루 이수 하였으며,1985년부터 신촌역 앞 에서 터를 잡고 현재 운명상담을 하고 있다. © 한철수 기자

이 책은 천지대자연의 이치를 지금의 시대에 맞게 실증이론으로 풀어내며 참스승의 반열에 오른 자운(紫雲) 이한국(李漢國. 52세) 선생이 10여년 집필 끝에 완성한 역학 서적으로 저자가 30년 긴 세월 동안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해온 삶의 지혜를 모아 엮었다.  

그를 만나러 신촌 철학원에 들어서자 어디서 유건을 쓰고 한복을 곱게 입은 그가 반긴다. 어디서 본 듯한 편안한 얼굴이다. 그렇다, 그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KBS ‘미스터리 추적’, 채널A ‘쾌도난마’ 등에 역술가로 출연해 사주(四柱)만으로도 대상자의 직업과 이름, 생사까지 알아맞히어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신촌의 철학원(계룡산도령) 한번 만남으로 저자의 진면목을 알 수 없어 6월 5일 교보문고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그를 다시 만나 그의 삶과 사람의 운명에 대해 한철수가 만난 사람 여섯 번째로 따따부따 해본다.(글쓴이 주)

-운(運)은 도로요, 명(命)은 자동차이다
 
지난 6월 5일 교보문고 출판기념회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의 운명을 그는 명리학자로서 아주 간단하게 답을 주었다.
 
“사람의 운명은 무엇일까요. 명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사주)를 말하고, 운은 그것을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명이 자동차라면 운은 도로와 같은 것이지요.”
 
바로 명리학은 인간의 운명을 사주(四柱)를 중심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사주명리학’이라고도 한다. 흔히 ‘점을 치다’는 일반적으로 역학(易學)을 말하는데 이는 주역을 중심으로 사람의 길흉화복을 풀어가는 것이다. 즉 주역은 8괘를 조합한 64괘로, 명리학은 십간십이지를 기본으로 한 육십갑자로 인간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둘은 하나같으면서도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같은 초점이다. 
 
다시 말하면 주역은 음양(陰陽)에서 출발해 사상(四象), 팔괘(八卦), 육십사괘로 뻗어가는 것으로 이를 숫자로 표시하면 2(음양)-4(사상)-8(8괘)-64(64괘)의 방식이다. 사주명리학은 숫자로 표현하기 적합하지 않고,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다시 오행으로 나누는 복잡한 방식을 취한다. 주역이 압축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명리학은 서술적인 것이다.
 
각설하고 이 오묘한 동양철학을 하루 이틀에 깨닫거나 이해 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저자는 오랫동안 이를 연구하고 지혜를 베풀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다. 
 
▲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출판기념회와 팬사인회 중 무대에서 질의와 답을 하고 있는 자운, 서예가 이무호 선생, 강재현 시인.     © 오병학기자

-3대가 유학을 기초로 한 동양철학에 밝아...자운 8세에 한학을 만나다
 
자운은 52년 전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역시 한학과 명리학에 조예가 깊어 근동은 물론 먼 이웃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집안은 원래 함경도 함흥에 뿌리를 두었었다.
 
“저희 집안은 함흥에서 만석꾼 소리를 들을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보는 심미안을 갖고 계셨습니다. 6.25전쟁이 일어 날 것을 인지하시고, 증조부께서 물려주신 재산을 헐값에 팔고 이남으로 내려오셨죠. 그래서 터를 잡은 곳이 바로 계룡산 자락입니다. 제2의 고향이 된 셈이고, 아버지의 5형제는 이곳에서 정착을 했고, 막내이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아 평생 한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제게는 몸과 마음의 본향이 된 것이지요”
 
자운의 조부는 함흥지방에서 유학자로 명망이 높은 대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사주명리학, 풍수지리학, 천문지리학 등 동양철학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 또한 조부의 명성과 버금가는 학자였다.
 
자운 또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 나 ‘할아버지(이규범)-아버지(이항종)-자운(이한국)’ 3대를 잇는 한학자이자 동양철학자 가문의 대를 잇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체계적인 학문과 어머니의 토속적인 전통신앙에 영향을 받았다.
 
“저희 가족은 할아버지의 기도터를 자주 찾아가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버지의 형제는 물론 저희 형제들은 그분들이 편안히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짐도 나르는 등 보조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산신이나 칠성신에게 기도하는 토속신앙이었지요. 어머니의 곁에서 기도준비도 도와드리고 함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도와 정진은 일반적인 무속인이나 역술인의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지금까지 학문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운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또래의 아이들이 공교육을 받을 나이인 8세에 학교보다 가풍에 따라 서당을 선택을 받아 한학을 공부하게 된다.
 
▲ 도원정사 정자에서 한학자들과...도원정사는 자운이 유학 학습과 정진을 위해 계룡산 자락에 세운 기도도량     © 경기인터넷뉴스
  
-어린 자운...10리길을 오가며 3년간의 한학 열공하다
 
자운이 고차원적인 영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방송매체를 통해 그의 명성은 진정한 수행자로서의 입지적인 자리에 올라 선 것은 학문에 대한 열망과 규칙적인 수도(修道. 수양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청소년 시절 학문 수행의 길을 따라가 본다.
 
“함흥의 갑부가 계룡산 자락으로 와 이런저런 이유로 가산이 탕진 됐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보릿고개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저희 집안에도 찾아 왔지요. 별수 없었던 운명입니다. 아무튼 가풍에 따라 8살에 집에서 10리나 떨어진 대명리의 한 서당에 입학을 했습니다. 서당학동의 필수 과목인 천자문, 사자소학,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뗐습니다.”
 
어린 자운의 서당 일정은 입이 벌어질 정도다. 아침 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1시간가량 걸어 도착해 공부하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으로 집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서당으로 새벽녘에 다시 집으로 아침밥을 먹고 다시 도시락을 싸들고 다시 서당으로... 먼 길을 오가는 공부하는 막내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어린 자운의 대화를 엿들어 보자.  

어머니: 애야. 그믐이라 어둡고 그런데. 오늘 밤에는 굳이 서당에 가지 않아도 되지않겠니. 길도 어둡고 피곤할 텐데 오늘은 집에서 쉬려무나.
어린자운: 아니에요. 남들과 똑같으면 어찌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대학자가 될 수 있겠어요. 저는 피곤하지 않아요. 공부가 재밌거든요.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내일 아침에 문안 올리러 오겠습니다.  

참으로 기특한 아들이다. 어린 자운은 3년 동안 이렇게 반복을 하며 할아버지와 같은 대학자가 되기 위해 묵묵히 공부를 했다. 11세가 되던 해 자운은 계룡산 신도안의 서당으로 옮긴다.
 
▲ 자운은 한학자로서 서예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 한철수기자
 
-청소년 자운...18세에 인생의 가치를 찾아 방황하다
 
“기숙을 했지요. 일 년 내내 신도안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너 번 집으로 되돌아가 농사일을 도왔지요. 수업료도 내야하고, 집안 일손도 줄여야하고... 아무튼 수확기가 끝나면 바리바리 싸들고 서당으로 향해 겨우내 밀린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촌이 다 그랬지요. 15세 쯤 되니까 남의 일도 하게 되더라고요. 날품을 팔아 부모님 도움 없이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주경야독이다. 그는 철이 들던 나이(?) 18세에 서당 자리에 군부대(계룡대)가 들어서면서 토지가 수용이 됐기에 신도안의 서당은 문을 닫는다. 이때가 청년 자운은 무엇인가를 잡기 위해 방황을 시작한 시기이다. 
 
“초조해졌습니다. 시쳇말로 노가다로 얼마간을 보냈습니다. 늘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의지인데, 손발이 잘린 기분이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고민에 빠졌지요. 그리곤 운명의 한 축을 잡아야겠다는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기가 구성지게 내리더군요. 모처럼 명심보감을 꺼냈습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불가인빈이폐학(不可因貧而廢學)이요, 불가시부이태학(不可恃富而怠學)이면, 후대광명(後代光明)하리라.'이다. ‘만약 집이 가난 하도라도 가난한 것으로 인해 배우는 것을 버리지 말고, 만약 집의 부유하더라도 부유함을 믿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후대에 광명을 이루리라', 주문공의 말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남의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해 옷가지를 챙겼다. 그리곤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청년 자운과 어머니의 말을 엿들어 본다. 

어머니: 얘야 해 떨어지는 시간에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청소년 자운: 어머니 제가 집에서 부모님을 돕는 것도 좋겠지만 먼 훗날을 위해, 농사꾼보다는 공부를 하는 학자가 되고자 길을 떠나려합니다.
어머니: 정히 떠나려거든 날이 밝거든 떠나거라.
청소년 자운: 내일 아침이면 제 마음이 변하여 못 떠날 수도 있으니 지금 떠나겠습니다.
어머니: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그렇게 하거라. 

청소년 자운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논산역을 떠나 하동의 청학동으로 향한다.
 
▲ 청년시절의 자운. 태어나 아직까지 한번도 머리를 깍지않았다.     © 경기인터넷뉴스

-청년 자운...지리산 자락에서 본격적인 수련과 정진을 하다

 
청년 자운은 모진마음을 먹고 우리나라 한학의 메카인 청학동에 들어섰지만 걱정은 한가지였다. 아무튼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다. 낯선 곳에 의지 할 것 없었던 그에게 광명의 빛이 보였다.
 
“마을에 염소목장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부터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목장주가 구세주였지요. 하지만 작은 염소라고 업수이 여겼다가 큰 코를 다쳤습니다. 꼴도 먹여야지요. 방목된 녀석을 끌어와야지요. 젖도 짜고.... 일이 여간 많아야지요. 일주일 쯤 지나니 다른 조건을 내놓더라구요. 한 달간 일을 하고 한 달간 공부하는 윤월제를 제안했습니다. 공부를 위해선 아쉽지만 받아들였지요.”
 
목장주의 변덕은 끝이 없었다. 청년 자운은 본 목적인 공부보다 염소를 다루는 달인이 될 즈음, 마을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듣는다. 목장주는 일꾼을 부리는 수는 제갈량이 울고 갈 정도라는... 그리곤 고개 너머에 수련당으로 가보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목장주는 반년을 부리고 떠날 때 보리쌀 석 되와 된장을 세경으로 주더라고요. 속은 상했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아무튼 수련당에서 한 반 년 동안 머물렀고, 또 보따리를 쌌습니다. 구례의 초동서사라는 곳으로요. 그곳은 청학동과는 달리 예닐곱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학문을 정진하는 전문서당입니다. 홀로 공부보다 여럿이 토론도하고 좋기는 했지만 또 학비가 문제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날품으로 모았던 돈을 달에 3만원 기숙비로 소진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노동판으로 향했다. 청년 자운에 인생에 있어 큰 사련이 닥쳤다. 쌀집에서 쌀가마를 옮기다 허리를 다치고 만 것이다.
 
▲ 자운 이한국 명리학자     © 한철수기자

 
-인생만사 새옹지마...명리학을 처음 대하다
 
청년 자운은 큰 뜻을 이루겠노라고 집을 떠난 지 3년 만에 허릿병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책이나 보며 뒤척일 수 밖에 없었다. 청년 자운에겐 인생무상이 절로 나올 수밖에.
 
“고향의 고샅길을 걷고 있는데 이웃에 요양을 온 사람이 저를 부르더군요. 그리곤 근처에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이 있으니 한 번 찾아가보라고 복채 3천원까지 쥐어주었습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습니다. 허! 글쎄 저더러 역술가가 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학자의 꿈을 꾸고 있는 제게 점쟁이가 되라니... 기가 막혔습니다.”
 
청년 자운은 되게 한방을 먹고 그 역술가가 준 책 한권을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책을 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기도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친 허리는 회복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마냥 빈둥거릴 수는 없었다. 그는 정읍으로 민속촌으로 공부거리와 일거리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시련은 끝이 없는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삶의 갈등, 역술가와의 조우...운명과 5분짜리 내기를 걸다

 
“그 시절은 절망이었습니다. 좋은 말로 아프니까 청춘이지요. 몸이라도 성하면 날품팔이도 할 텐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비는 촉촉이 내리지요. ‘내가 살아서 뭐 하리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지요. 그냥 이끌렸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논산 강다리로 올랐습니다. 그리곤 외쳤습니다. ‘앞으로 5분 동안 구해주는 이가 없으면 떨어지리라’. 운명 아니 목숨을 건 내기였지요.”
 
다리 난간에 올라서자 이 십 여년 그의 삶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5분, 이 시간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긴 시간이었으리라. 그런데 택시 한 대가 급하게 달려와 멈췄다. 그리곤 ‘빨리 타라’고 큰 소리를 내고 손짓을 했다. 그 사람은 고향에서 사주를 봐주던 그 역술가였다. 자운은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그 역술가의 대답이 걸작이다.
 
“기도 중에 산신께서 급히 논산으로 가라고 했네. 그쪽으로 가면 반드시 도울 사람이 있다는 예지를 받은 걸세. 긴 머리에 하얀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바로 저 사람이 싶었지. 허허”
 
자운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 긴 머리가 그를 쉽게 찾게 했다. 그의 긴 머리는 우리나라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튼 배냇머리를 지금까지 지킨다는 것은 선비의 정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부정을 했던 유학과 역술이 만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다.
 
▲ 교보문고 출판기념회...자운 이한국의 "운명을 여는 지혜"     ©오병학기자

-삶의 전환, 일공 스님을 스승으로...세상을 읽으려 만행(萬行)을 떠나다

 
누구에게나 운명을 바꿀 시기는 시절 인연에 따라 정해진다. 자운은 논산의 강다리 인연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역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역술가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그 역술가가 이끄는대로 논산 시내로 들어가 난생처음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을 먹었습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제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천운을 타고 났고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그리고 나약한 생각을 아까 그 강물에 버리라고. 길의 방향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조건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됐습니다.”
 
그 역학자는 자운을 택시에 싣고는 이리(익산)으로 가서는 승복을 입은 그의 제자에게 자운을 맡기고 홀연히 떠났다. 익산에서 만난 속세공부와 역학(명리학)의 스승은 바로 일공 스님이다.
 
새로운 공부에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일공은 자운에게 이미 학문으로서의 공부는 마쳤으니 세상 속으로 나가 속세공부를 하라고 권유한다.
 
“일공 스님은 속옷 한 벌, 침통, 만세력, 볼펜을 배낭에 우겨넣고는 해질 무렵 쫒아 내듯이 만행을 보냈습니다. 그리곤 만행의 세 가지 수칙을 당부했습니다. ‘첫째로 한 집에 삼일 이상 머물지 말 것. 둘째로 돈을 내고 밥이나 잠자리를 사지 말 것. 셋째로 가급적 차를 타지 말고 걸어서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대문을 나서는데 얼마나 서운하던지요. 세 마디 말이 마치자 해가 뜨는 쪽으로 10리만 가면 선인(善人)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자운은 그 날 그 시간이후 기약도 없이 인연을 만나려 만행이라는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스승의 말대로 그는 무작정 동쪽으로 향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밤이슬은 피해야겠다고 하룻밤 묵을 집을 찾았다. 우리민족은 셋(3)을 좋아한다. 마을의 두 노인을 지나치는 인연으로 보내고 세 번째 만난 아낙네 역시 나그네를 들일만한 빈방이 없다고 일언지하로 거절을 한다.
 
“마음을 먹었던 세 번째 인연을 놓칠 수는 없잖아요. 아낙의 관상을 보니 자식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사 이야기를 했지요. 겁을 주자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정색을 하고 받아주시더군요. 만행 첫 인연입니다. 늦은 저녁을 공양받고, 가족 모두의 사주를 차례로 봐주었습니다. 이튿날 조반을 먹고 길을 떠나려 하자 제 손에는 복채인지 노잣돈인지 5천원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자운은 홀로가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스승의 당부대로 조금씩 벌이한 돈으로 밥을 사먹거나 버스비는 물론 잠자리 비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하룻밤 더 유하되 세 밤을 넘기지 않았고 충청도 일대를 계속 걸었다. 그렇게 봄부터 가을까지 가을이 끝날 무렵 익산 일공 스님의 기도처에 도착했다.
 
▲ 교보문고 출판기념회...독자에게 사인을 하고 있는 자운 이한국     © 오병학기자

-5개월간 보충수업...익산에서 서울로 신촌에 터를 잡다
 
자운은 스승과 5개월 동안 수양과 기도 즉 ‘수도’를 보태자 이듬해 봄, 스승은 다시 그가 집을 떠나기를 권고한다.
 
“스승님께서는 제가 시골에 있을 팔자가 아니니, 저를 필요로 하는 서울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가라니 가야지요. 익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또 걸었으나 사주가 똑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사람 특히 쌍둥이의 지문이 다 다르듯이 사주 역시 그렇습니다. 인연 또한 그렇지요. 수행입니다. 아픔은 만져 주고, 사주와 맞지 않은 이에게는 사주와 맞는 아호(이름)을 새로 지어주기도 했지요. 만행은 그야말로 세상공부입니다. 제게 세상을 바라보는 예지의 능력이 조금씩 쌓여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운은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신촌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 터를 잡는데도 일화가 있다. 그가 서울로 만행 중 익산 미륵산 미륵사지에서 1박을 했다. 여러 방법으로 기도를 하던 중 서울 수유리 근처에 산다는 보살을 만났다. 그녀는 자운이 운과 명을 해석하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함께 동행 할 것을 간청했지만 만행중이라 연락처만을 받고 인연을 잠시 끊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잠실에 도착했지요. 잠시 낮잠을 잤는데, ‘신촌으로 가거라.’는 현몽을 있었습니다. 아마 그곳에 재종(사촌)형님이 계시니 의지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재종형님 댁에 며칠간 머물면서 그동안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단칸방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라. 그저 막막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삼각산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자운은 미륵산의 인연을 떠올렸다. 삼각산 아래는 바로 화계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삼각산 기도터에서 기도를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갈 때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그 보살을 만난 것이다. 그녀가 먼저 자운을 알아봤다. 둘은 서로 합장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참으로 기가 막히더군요. 그 보살님께서는 제 딱한 사정을 듣고는 당시 30만원을 빌려 주셨습니다. 그리곤 100일안에 꼭 갚아드리겠노라  약조를 했지요. 참으로 귀한 인연입니다. 그동안 모았던 총재산 20만원과 그 돈을 합해 50만원이 마련돼 사무실을 장만했습니다. 드디어 저만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나이 스무 살에 말입니다. 집기도 들어오고, ‘계룡산 도령’ 이라는 간판도 달고...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자운은 보살과 100일 약속을 지킬 정도로 거짓말처럼 상담자들이 몰려왔다. 현재도 당시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상담자들도 부지기수다. 아무튼 1년이 지나자 문턱이 닳기 시작했고, 5년이 지나자 1주일 전에 예약해야 하는 지경에 올랐다. 
 
▲ 채널A 직언직설...2015년 청양의 해 나라의 운과 대선후보의 운을 얘견하는 자운 이한국   © 채널A캡처
 
-30년간 30만 명 인연의 끈...방송을 통해 능력이 알려지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일생동안 대운이 3번은 찾아온다고 한다. 자운이 길게 머리를 땋아 내리고 흰 도포에 한학자의 풍으로 사주를 봐주니 장안의 화제였다. 그의 능력보다는 외모를 보기 위해 찾아 오는 이가 많았다. 현재는 그의 나이에 걸맞게 상투를 틀고 유건을 쓰고 있어 옛 모습은 사라 졌지만 그의 기풍(氣風)은 오히려 범접하기 어려운 성숙한 모습으로 변했다.
 
아무튼 서울 신촌 생활 10년 만인 1994년이 자운에게는 들어온 대운일는지 모른다. 바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운명의 방정식”에서 사는 신분이 서로 달라, 물에 빠져 죽은 두 남녀(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던, 의대생 남자와 공원 여성)의 사주를 들고 와 미션으로 던져 놓고는 사주를 푸는 과정이 녹화하고는, 여과 없이 방송됐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긴장이 됩니다. 그저 남자와 여자의 사주를 들고 와 궁합을 봐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살펴도 이승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기도방에서 기도를 하니 물이 보이는 겁니다. 그것도 깊은 물이... 그래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 아니냐고. 방송이 나올 때 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방송의 정곡을 찌른거죠. 참으로 혹독한 방송 신고식이었습니다.”
 
이 방송은 자운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 이듬해(1995년) 같은 방송프로그램 ‘궁합’ 편에 이혼한 7쌍을 전부 찾아내 방송국 관계자는 물론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SBS “미스터리극장”에 우체부를 따라다니는 강아지의 전생을 밝혔고, KBS2 “미스테리극장 추적-부부방정식”에서는 이승철과 강문영부부의 이혼을, 신성우와 채시라의 결혼 불발 등을 사주만으로 밝히기도 했다.
 
또한, 채널A “쾌도난마-운명 논리로 풀다”에서 2012년 신년특집 대통령후보들을 사주와 관상으로 풀었고,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를 시기까지 정확히 예언을 했다.
 
▲ 학문과 기도의 도량 도원정사...아직은 미완이라는 자운 이한국     © 경기인터넷뉴스

-중년 자운, 아직도 ‘미완성’...기도의 끈을 놓지 않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얼굴 자운의 철학원에 들어섰을 때, 긴머리의 자운과, 서당의 자운, 그가 지은 시 몇 편이 벽에 걸렸을 뿐 수많은 방송에 출연을 했으나 방송 캡처 사진은 단 한 장 없었다. 진정한 선수(?)는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인터뷰가 끝날 때쯤 알게 됐다.
 
자운은 엄청난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상담자의 발복(發福)을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한다. 그저 쉬는 시간 없이 틈나는 대로 철학원 별도의 기도처에서다. 그는 자신이 아직 미완성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기도에는 복을 구하는 구복(求福)기도와 복을 나누는 발복(發福)기도가 있습니다. 또 신에게 의지하는 의타적인 기도가 있고, 마음을 닦는 기도가 있습니다. 신명을 통해 감응을 얻는 것과 자성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과 장점을 잘 다스리는 원력을 얻는 무아공법의 기도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무아공법을 통해 제 자신의 영을 밝게 해줍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 고향의 부모님들이 쉬지 않고 기도로 정진하듯이 제 자신도 미완성의 인간이기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늘 기도를 합니다.”
 
자운은 4가지 방법으로 기도를 한다. 첫째가 사무실 출근 전 집에서 하는 기도, 둘째는 출근 후 사무실에서의 기도, 세 번째 한 달에 한번 계룡산기도터에서의 기도, 마지막으로 무아공법으로 하는 기도이다. 또한 기도는 3단계로 하는데 첫째는 국태민안을, 두 번째는 인연이 닿은 이들과 회원을, 세 번째는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한다.
 
“무아공법으로 기도하게 된 것은 일공 스승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승님은 ‘판치생모(板峙生毛)’ 방식의 화두를 몇 년 동안 던졌습니다. 판치생모는 ‘판자에 털이 난다’는 뜻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을 묻고 답하는 것이지요. 스승에게서 떠나기 전 어느 날 불현 듯 이 화두를 깨닫게 됐지요. 이 이치는 이렇습니다. 지상에는 상식이 있는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 밖의 세상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법입니다. 내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더 넓은 생각하기 위해 무아공법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수련방법입니다. 이후 특별히 학습을 하지 않아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도 얻었습니다.”
 
자운이 계룡산을 찾는 것은 다른 기도자와는 차별이 있다.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집안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다. 자신의 조상의 정기가 서려있고, 초심을 버리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산의 정기를 받기 위함도 있다.
 
▲ 학문과 기도의 도량...도원정사     © 경기인터넷뉴스

-도원정사, 조상의 기도터를 수련장으로 만들다
 
자운은 서울로 와서 그야말로 승승장구를 했다. 명리학자로 사회적 명성도 얻고, 부도 많이 축적되었지만 가슴에 지닌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가족의 숨결이 남아있는 고향의 기도터를 그냥 두기에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곳에 도원정사(道圓精舍) 짓고는 기도도량과 배움과 나눔터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터전에 머물면서 개인의 상담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하늘의 이치를 알고, 우주의 흐름을 느끼면서 사는 저로서는 설법이나 강의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싶었습니다. 깨달음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바른길을 일러주고자 도원정사를 건립하게 됐습니다. 1994년 첫 삽을 떠서 완성하기까지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를 직접 심기 시작해 올해까지 22년이 걸렸습니다.”
 
도원정사는 자운에 있어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한 성과물 중 하나다. 지금은 도원법회를 통해 30여년 닦아온 학문적 지식과 자연의 이치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공익적으로 산다.’는 “이타공익” 정신이 나누고 있다.
 
▲ 도원강의...인생과 운명은 물론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도 자운 만의 화법으로 풀어나간다.     © 도원강의 캡처

-자운 이한국의 “운명으로 여는 지혜”는 어떻게 꾸몄나
 
이타공익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자운은 지난 40년 가까이 수행을 하면서 10년 동안 틈틈이 적은 내용을 “운명으로 여는 지혜”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천지와 자연의 법칙과 수행자로서의 삶의 고백까지 삶의 지혜를 구하는 운명과 철학을 대화하듯 자운만의 화법으로 쉽게 풀어냈다.
 
이 책은 7장으로 엮었다. 제1장은 ‘인생의 지혜’로 자운이 시가를 적어 삶이 고단하거나 쉼표를 찍고 싶을 물이 흐르듯 읽어 나갈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단문과 운문으로 자운만의 철학을 담았다.
 
제2부는 ‘기도의 힘’으로 일상에서 우리는 늘 기도를 한다. 매일 몇 십 통씩 주고받는 SNS에서도 행복을 추구하고 나누어 준다. 일상의 기도법과 수련의 기도법을 소개하고 있다. 자운은 2부 서문을 통해 “기도라 함은 처음부터 원대한 일을 이루려 하지 마세요. 천지인 삼합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 사람이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하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사 모든 일들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의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그 꿈이 간절하면 할수록 더 크게 이루어지나이다.”고 했다.
 
제3부는 ‘하늘의 이치’로 인생의 길에 있어서 운명의 지도를 깨달으면 진정 바른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글들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다뤘다. 그리고 부자, 부부, 친구 등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가벼우면서 심도 있게 풀어썼다. 특히 부부의 인연을 다루면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그들의 결실을 얻어 존재를 영속시키려는 유전자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 해 나가는 음양의 원칙에 부합 된다."고 소개했다.
 
제4부는 ‘인연의 결실’로 인연과 궁합과 오행을 통한 인연법 등을 적었다. “부부는 1000생중 500생의 인연이 있다”는 등 인연을 중시여기라는 잠언을 적었다.
 
제5부는 ‘움직이는 운명’으로 “명은 타고나고 운은 변화한다. 자신이 타고난 팔복분복을 깨달아 관한 지혜로 큰 이념을 펼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중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명리학 개론과 사주의 설명과 운을 보완하는 좋은 이름 짓는 방법 등을 누구나 싶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써내려갔다.
 
제6부는 ‘대자연의 섭리’로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의미와 사후세계와 윤회와 장례와 제례에 관한 관혼상제 중 상제를 주로 다루었다.
 
제7부는 ‘수행자의 삶’으로 자운 이한국이 부모의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와 지금에 이른 52년의 삶을 자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운기일통...기자에게 건내기 위해 휘호를 쓰고 있는 자운 이한국     © 한철수기자
 
-글을 마치며
 
지인으로부터 자운을 소개 받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그런 점쟁이를 만나는 것 아니냐 남들이 써준 글로 책을 엮지나 않았을까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책을 먼저 받았다. 첫 장을 열자 푹 빠지게 됐다. 특히 인연과 운명을 주제로 한 글들은 가끔 팔자타령을 부르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한학에서 명리학으로 전환된 자운의 30년 공부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인생이 고달프거나 인생의 나침판이 필요한 이들의 필독서로서 충분하다.
 
(사족) 인터뷰를 마치고 상담실을 나서려 하자 잠시 불러 세운다. 그리곤 일필휘지로 “운기일통(運氣一通)”이라는 휘호를 족자에 적어 건낸다. 자운이 10년간 적은 한 권의 책이 이 네 글자에 압축이 된 듯해 서재 벽 한가운데 걸어두고 글을 쓸때나, 책을 볼 때마다 바라본다.
 
요즈음 나라가 어수선하다. 특히 저속경제로 힘들어 하는 뭇백성과 나라 일을 주관하는 모든 이들에게 '운기일통'이 네자가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표로 전해 주었으리라. 자운이 매일 국태민안을 위해 기도하는 그 뜻이 담겨있는 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자운 이한국 역술가의 삶에 대한 인터뷰와 그의 책 “운명을 여는 지혜”를 3번 속독과 정독을 통해 정리했음을 밝힌다. 
ⓒ 경기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자운, 이한국, 운명을여는지혜, 한철수가만난사람, 계룡산도령 관련기사목록

[영상리포트]가평군, 춘천 방하리 A씨, 측근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