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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가 만난 사람(5)]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한다’ 왕릉문학회...이충재 회장
남양주 어룡마을에서 자라 구리시에 머물러...시인으로 독서평론가로 바쁘게 살아
기사입력: 2016/04/09 [00:18]  최종편집: ⓒ 경기인터넷뉴스
한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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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가 만난 사람(5)]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한다’ 왕릉문학회...이충재 회장    

[문화=경기인터넷뉴스] 경기도 구리시에는 아주 특별한 문학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문인들이 있다.  조선왕릉을 중심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과 왕식 가족, 풍경을 중심으로 한 자연을 시로, 수필로 표현하는 “왕릉문학회”다. 

이 문학회는 지난 12월 왕릉문학 “왕릉은 잠들지 않는다” 제하의 창간호를 내고 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왕릉문학회 이충재 회장     ⓒ 경기인터넷뉴스


이충재 회장과의 인연은 결코 짧지 않다. 이십 여 년전 구리문인협회를 이끌고 있던 어느 날. 구리문협 카페를 통해 첫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이 단체의 리더였던 나는 이 회장이 편협된 공간에 갖히는 것 보다는 자유로운 문학의 영혼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가끔 만나 문학을 고민하고, 인생의 형과 동생 관계로 호형호재하다가 왕릉을 중심으로 한 문학회를 제안했고, 이 회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 뒤 회원구성과 여러가지 절차를 거쳐 2년전 왕릉문학회가 결성되었고, 초대회장을 맡은 것이다.   
 
서로 잘 아는 관계에서의 인터뷰는 편치 않았다. 하지만 왕릉문학회의 의미와 이 회장의 문학세계와 개인의 삶 두 가지를 구리시 선술집에서 만나 지면에 제한없이 따따부따 해봤다. (글쓴이 주) 

-우리나라 사람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충재 시인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 어떤 소년이었는지요?  

“살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고향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읊었던 단어가 바로 ‘고향’입니다. 저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석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태생이 토속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양주시 도곡리 어룡이라는 마을로 이사를 와서 그 곳에서 초·중·고를 보냈습니다."

▲ 남양주 어룡마을 어린시절의 이충재 회장    ⓒ 경기인터넷뉴스


-남양주의 어룡마을 참 좋은 곳이죠. 저도 가끔 가보지만 이 시인이 자란 어룡마을은 어떻습니까.

"제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개울을 사이에 두고 개울 건너에 서너 채의 집과 제가 살던 곳에 대다수의 집들이 격 없이 자연스럽게 운집해 살가운 공동체 생활을 해 왔다고 보면 맞습니다. 동네가 얼마나 작은지 윗마을에서 누구를 부르면 아랫마을에서도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큼 아담한 공간을 지닌 한 폭의 그림 같은 어룡이라는 이름을 지닌 채 오랜 세월을 버텨온 마을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시심(詩心)을 품고 자랐으며, 그 마음이 절정에 다다른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詩人의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태권도를 병행하면서 시 쓰기에 참으로 열심이었던 소년이었습니다.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았어도 일기 쓰듯 어린 마음속의 정서를 시라는 매개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가는 소통의 첫 발로 삼고 내 디딘 곳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시라는 세계 속으로 더 친밀하게 그리고 쉽게 마음의 뿌리를 내디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중학교 은사님을과 문학적 만남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지요. 그분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중학교 시절 문예부 담당 선생님을 만나 제 3자의 입으로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품게 된 것입니다. 가난하여 꿈을 펼칠 용기가 부족했던 소년, 공부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소년에게 다가온 밤하늘의 별빛 같은 선생님의 말씀은 분명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에 힘입어 열심히 시 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계절 내내 시간이 나면 시 낭송테이프를 들어가면서 1시간씩 산책을 나서곤 했지요. 그 습관이 아직 남아서 요즘도 홀로 산책을 즐기는 생활을 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청소년기  방황하던 시절의 이충재 회장     ⓒ 경기인터넷뉴스


-청소년기 학업관계로 힘든 시기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 없을 수 있겠는지요? 저 역시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주입식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고 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자유롭게 제 전공에 몰입할 수 있었던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자유롭게, 치열하게 공부하는 일을 향해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이충재 시인     ⓒ경기인터넷뉴스
중학교 3학년 무렵 가정의 불화로 저는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보던 전 날 밤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잠은 친구 집에서 겨우 잘 수 있었지만, 아침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고사장으로 가서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이라도 한 듯 불합격, 진로를 바꿔 부천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고자 했던 그 학교에 떨어진 것이 오히려 약이 되었는지도 모를 입니다.

2시 간 여 통학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내 인생의 비전을 놓고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다시 나의 꿈이었던 시인의 삶을 위해서 차곡차곡 망루를 쌓아 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공부에도 열심을 해서 내 반에서 1등을 할 수 있었고, 학급장(반장)으로서의 리더십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꿈을 위해서는 공고는 삼면이 탁 막힌 감옥과도 같았으며 턱 없이 좁아 보였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요. 아주 편하게 공부를 하는 요즈음 청소년들에게 말도 안되는 상황입니다. 그 뒤의 일정이 궁금해집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학교에서도 인정받으며 잘 다니던 시절 자퇴 원서를 내고, 대입검정고시 학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주간에는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학원을 다니는 이를테면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가난은 또 나를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파출소 급사를 비롯하여 한약방 점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요.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역시 단단한 인성의 소유자인 시인을 만들어가기 위한 신의 섭리와도 같다고 보면 틀린 답은 아닐 겁니다. 그 과정 속에서 보고 느꼈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오늘의 이충재시인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고 봐도 맞습니다."

-그랬었군요.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학은 무엇을 전공했습니까. 

 “그렇게 시작한 공부의 열정은 신학대학으로 저를 옮겨 놓았으며, 이어서 문학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한국방송통신대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를 거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일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다. 문학...특히 시를 쓰게 된 동기는?

▲     ⓒ 경기인터넷뉴스

"어느 노 시인의 말씀을 예를 들어 그 답을 찾아갈까 합니다. 시인은 시인으로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 시대는 시인이 만들어져 간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잘 못 만들어가기 때문에 문제라고 합니다.

저는 아마도 전자의 경우에 해당될 듯싶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시인으로서 그리고 시가 갖추어야 할 특징에 대해서 사사받기 전 이미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인으로 등단을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이후 더 나은 시를 쓰기 위해서 문학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시대의 시인을 생각하면, 저는 순서가 뒤 바뀐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자란 과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건강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자연스럽게 우울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내성적인 성격은 그 특징을 극명하게 실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만 살아왔다면 오늘날의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사의 이충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때 시가 저에게 찾아 온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중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던 외삼촌과 한 방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외삼촌은 잡지를 즐겨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랬었군요. 동감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외삼촌의 잡지에서 무언가 암시를 받았으리라는 느낌이 오는데.

"맞습니다. 어느날 문창호지 위에 붙어 있는 잡지 면에 실린 한 편의 시를 보고, 심중에 자고 있던 시인의 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인의 불길이 제 어린 마음에 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대부분 그 정도 상황이면 가까운 사람에게 대부분 처녀작을 보여 주는데 이 회장은 어떠했는지요.  

"여담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참 시 쓰기에 물오를 때,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 주기도 하고, 시인이 되겠다고 고백하곤 했던 적 있습니다. 그 때에 제게 돌아왔던 친구들의 비아냥거림을 중학교 졸업 10년 후 등단하여 시집이 나오고 난 직전 진심으로 사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 그 만큼 제 살아온 길지 않은 삶의 언저리에 난 상처라고나 할 까요. 그 애중의 역사가 시라는 매개를 통해서 용해되어가는 중이라고 보면 맞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이란 직함은 제 어린 시절의 가난과 자연의 멋과 가정환경이 만들어 준 우울이란 감정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위대한 선물이자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를 쓸 때면 온통 어질러진 내 영혼이 깨끗하게 씻김을 받은 듯 정화됨이 느껴지곤 합니다."


▲ 이충재 회장     ⓒ 경기인터넷뉴스



 -문인으로 인정을 받는 케이스는 많지 않다. 첫째로 꼽는 것이 신춘문예 당선, 둘째가 문학상에 오르는 것인데... .몇 해 전 젊은 나이로 기독문학상을 받았다....당시 가족의 반응은?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어머니께서 시상식장에 오시고 싶어하심을 은근히 비추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상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저는 어머니의 그 의중을 읽어내지 못한 무지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뭐 대단하다고 가족이 총 출동을 하는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식이 상을 받는다는데 어머니가 오시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무심했던 탓을 후회하고 어머니를 초대했습니다. 아내와 딸들이 기뻐하고, 동생가족들이 행복해하는 것과 직장 동료들과 나누는 기쁨은 말할 것 도 없었지만, 가족과의 뒤풀이 겸 식사 중,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를 낳고, 저 때문에 두 번을 우셨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군에 입대하여 퇴소 식 때 늠름해 보인 아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군복을 차려입은 장남의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인 듯합니다. 두 번째가 바로 문학상을 받고, 당당히 소감을 밝히는 아들을 보았을 때라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다 죽어가는 아들을 향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이제 다 죽게 되었으니 집에나 가서 죽으라며 보냄을 받았던 아들, 그 아들을 둘러엎고 먼 길을 오시던 어머니가 흘리셨던 눈물을 순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난하여 읽고 싶은 책 한 권 사 주지 못했던 장남이 장성하여 이렇게 시상식장에서 자랑스럽게 소감을 밝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오시더랍니다.
 
그 때의 상황을 떠 올리면 저 역시 눈물 흐름을 막지 못할 듯합니다. 어쩌면 그 자리는 상을 받는 것으로 인한 기쁨 보다는, 장남인 제가 또는 가장인 제가 가족들을 향해서 당당히 비전을 이루고, 희망을 던져 준 자리라는 점에서 가족에게 행복을 선물했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새로운 가족애를 느낄 수 있게 해 준 곳이 바로 문학상 수상당시였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문학평론 특히 서평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서평은 주로 어떤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지...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와 동기는?
  
"유명세는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혹은 맡겨진 문학인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뿐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지가 23년이 되었습니다. 잘 쓰지 못하는 시를 부끄럽게도 참 많이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혀 생각지도 않은 평론가의 길을 걸어가자는 제안을 받아 응모를 하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나 시도 그렇지만 평론에 있어서도 다른 평론과는 변별력을 갖고자 했습니다.

 ‘시 쓰기와, 시 읽기를 통한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의 내적 치유’가 첫 평론 대상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는 시인이 되고자 도전하는 많은 후배들을 위해서 시적 멘토가 되어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마음껏 내적 치유가 일어나고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세워가는 매개로서의 시 쓰기를 돕고 싶어서 평론가의 길을 하나 더 만들어 놓고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시 한편을 창작하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평론가로서 시와 시집 그리고 시인의 삶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필요충분을 지닌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 왕릉문학회...매달 모여 왕릉의 시를 발     ⓒ 경기인터넷뉴스



  -그렇군요. 오랜 시간 만났지만 독서의 철학이 확실한데...독서는 무엇이라 생각하고 혹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살아가면서 책 읽기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해 안타깝게도 독서의 인구는 점점 더 줄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큰 불행을 자초하는 사회분위기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참된 가치를 외면하는 무지를 낳는 주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개선해 보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서평입니다. 서평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도서를 소개하는 차원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가능하면 시간이 없어서 양서를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이유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독서 역시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사람의 정신 즉 영혼의 세계를 든든히 만들어 줄 수 있는 영혼의 이정표 혹은 청사진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독서과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회장은 독서후 저장하거나 남에게 알리는 곳간이 있느지요.

그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바로 문인들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런 독서 습관은 오래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서평쓰기와 연결시킨 것은 3~4년이 된 듯합니다. 일단 제가 읽은 책은 거의 다 서평으로 옮겨 놓습니다. 일단은 ( http://cafe.daum.net/firstlovepogny 외로운 동거)와 ( http://blog.naver.com/autom12 )에서 쓴 서평을 여러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월간지 ‘내 마음의 편지’ 에 3년 째 서평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에 펴낸 책 “고장난 영혼의 시계를 수리하라"는 중년의 고민이 많이 담겨있다. 서평에세이로 몇 년간 활동한 1차 완결판이라고 본다. 화자인 중년을 향한 건강한 자아를 만들기 위한 조언은.    

"중년하면 나눌 말이 참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제가 하고 싶은 화두 중 가장 중심에 놓인 주제요 대상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중년들이 너무나도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중년이 앓고 있는 병의 심각성은 대단합니다. 그 병명 혹은 증상에 대해서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그 부분만 다시 짚고 넘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 병을 가벼이 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시급히 치유해야만 하는데, 그럴 새 없이 바쁘고 가야할 길이 멀어서 문제입니다.

아마도 기자님께서 던진 질의와도 같이 ‘자아’의 자립, 정체성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중년에 대한 화두로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중년기에 맞닥뜨리는 많은 일들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자아’ ‘건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세워가는 일입니다.

▲ 이충재 시인의 수상집..."고장난 시계를 수리하라"     ⓒ 경기인터넷뉴스


-중년은 누구나 고민이다. 참다운 중년이 되기 위한 비법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책의 저자로서 중년의 올바른 대처법은 있는지. 

" 중년의 길은 다양복잡 합니다. 사람마다 대처법이 다르지요. 어누 위치에 있던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신을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참 어려운 방법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맡겨진 일이 고단하더라도 여유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잃게 되면 재발견의 기회가 그렇게 쉬 찾아오지 않는 것이 21세기 현실입니다. 뒤에서 달려오는 이들의 발굽에 짓밟히고 말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유물사관에 사람의 격을 빼앗긴 결과입니다.

여유, 자신을 홀로 돌아 볼 줄 아는 여유, 그것이 여행을 통하든, 사유를 이끌고 오는 독서나 음악회, 미술전시, 연극, 영화관람, 나 홀로 트레킹 등의 여가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변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조금은 추상적이다. 중년이 여가를 즐기는 것은 갖가지 방법이 있지요. 문학인으로 독서평론가로 철학적 잣대를 댄다면 사람마다 지닌 'OO관'이 있다. 이 OO관이 누군가의 철학으로 남기기 위해선 어찌 해야하나요

"철학은 추상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중년이 장년과 노년으로 진화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점마다 영향력을 받고, 관계성을 잇는 가족, 자녀, 친구, 제자, 후배들이 나의 삶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건강한 정신과 아름다운 삶이라는 추억을 만들어 인생 후배들에게 바퉁을 이어주고 또 다른 대지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중년기에 자신을 든든히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의 정립’이 절실합니다. 그것을 ‘가치관’ ‘인생관’ ‘개인철학’ ‘신앙관’ ‘인간관’ ‘문화 예술관’ …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관’의 정립은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갖가지의 필수적 행위가 수반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중요성을 저는 ‘독서’와 ‘사색’에 두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충분한 위로와 안위 그리고 용기와 절제력과 규모 있는 자기 인생이란 그릇을 만들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16권의 책을 내놓았다. 참으로 부지런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은 몇 권이고, 서평을 포함한 잡문의 발간 횟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부끄럽습니다. 몇 권을 출간 했는가 보다는 출간한 도서들이 얼마만큼 가치철학을 담고 씌여졌는가에 대한 진의를 묻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가 묻기에 답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하하

시집은 『그대 입술의 힘』외 8권이고요. 산문집으로는 『행복한 아이야 지혜롭게 세상을 배우거라』외 3권입니다. 수필집으로는 중년에게 말 걸기 명목의 서평에세이인 『고장난 영혼의 시계를 수리하라』외 1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칼럼집 『아름다운 바보 세상보기』와 청소년들의 자아를 위한 계발성 에세이로서 『책의 숲속에서 멘토를 만나다』가 있습니다.

발간 횟수는 정기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못한다고 보는 편이 어울리겠습니다. 저는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쓸 뿐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출간기회가 주어지더라고요. 그 때, 책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부족한 제가 어느 사이 16권이란 도서를 세상에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집을 비롯한 산문집에 서평까지 그 많은 책을 내기란 쉽지 않을텐데...발표가 헤프다는 지적을 받지 않는지요.

"어느 누가 말하더군요. 글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고요?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집필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쓸 수 없는 그 날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그래서 시가 찾아오고, 수필이 찾아오고, 다른 장르의 글이 찾아오게 되면, 게을리 하지 말고 부지런히 쓰는 것이 0글쟁이인 나의 책무와도 같다고 말입니다. 

▲ 왕름문학회 회원     ⓒ경기인터넷뉴스


저에게는 짧은 생애지만 삶의 고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어쩌면 친구들이 지니지 못한 고뇌의 창고를 서너 채 곁에 두고 살아온 샘이지요. 그 고뇌가 오늘날 저로 하여금 이렇듯 문학 장르를 초월하여 왕성하게 집필할 수 있도록 추진체가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 결과 평론가의 길이 열린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제부터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창작의 범위를 넘어선 평론가의 길을 쉼 없이 달려가야 할 계획입니다. 즐거운 망명자적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변별력이 없는 글만 가지고 놀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시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영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 길어 올린 작품들은 이 시대의 정신을 놓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내적치유의 진단서이자 처방전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왕릉문학회에 대한 질문을 하겠다. 왕릉문학회를 결성하게 된 동기는?    

"이 질문에는 단연코 한 사람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바로 동구릉에서 문화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시인이자 향토사학자로 강연가로 살고 있는, 바로 형님이시지지요. 형님과 저의 인연은 20여 년이 된 듯합니다. 어느 날, 왕릉문학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자고 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합일에 이르게 되었고, 공식 출범한지 이제 2년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해인 2015년에는 왕릉문학회 동인시집 창간호로 『왕릉은 침묵하지 않는다』을 낼 수 있었습니다. 좁은 구리시에는 두 개의 역사란 가치 줄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구려 역사요, 또 다른 하나는 단연코 동구릉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부터인가 동구릉이 세계문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리지역은 고구려의 빛 보다는 조선의 빛이 융숭하게 드러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왕릉문학회 창간호 "왕릉은 침묵하지 않는다"     ⓒ 경기인터넷뉴스


-그렇지요. 구리시는 역사와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그 구성원들은 소리없이 활동하고 있지요, 동구릉을 중심으로 한 왕릉문학회는 우선 조선왕릉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활용을 해야 할까요. 

"왕릉은 형님이 전문가시죠. 그러니까  왕릉문학회도 제안 하셨지요. 활용방안은 계속 연구 중입니다. '역사와 오늘이라는 현재가 하나가 될 때에, 먼 미래의 또 다른 현재 그날의 행복을 기할 수 있다'는 평범한 잔리가 있다. 

왕릉문학회는 참으로 매력이 넘치는 단체입니다. 꿈이 있다면, 오늘의 건강한 삶, 아름다운 사회, 시대, 국가, 인간을 세워가기 위해서 왕릉이라는 역사의 공간을 심층 취재, 연구하고, 시와 수필로 작품화 시켜, 우리나라 앙릉을 문학으로 소개하기 위해 결성된 것입니다. 아직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국적으로 활동범위를 확장해 감을 기대하면서 매월 1회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모일 때마다 가까운 능을 돌아보고, 그 느낀 바를 한 편의 시로 만들어 회원들과 서로 나눔을 갖고 있습니다. 진일보 하여, 서로의 지성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돌아가면서 인문학강의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저희 왕릉문학 회원들만의 모임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단체로까지 범위를 넓혀 갈까 고려중입니다."    

-왕릉문학회는 현재 어떤 경향의 문인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쉽고 힘든 것은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방금 위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처음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중은 창대하리라 믿습니다.

저희 회원들은 시인이 8 명, 시 낭송가 1명, 사진가 1명 등 총 10명입니다. 그러나 문은 언제나 열어놓고 있습니다. 사행심을 조장하며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문인들 말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작품을 써 내고자 하는 치열성이 내재된 인물들의 지원은 언제든지 대환영합니다."

▲ 조선왕릉 ...문종의 현릉     ⓒ 경기인터넷뉴스


-왕릉은 조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삼국과 고려 외 크고 작은 나라들이 있다. 왕릉문학회의 앞으로 비전은.

"단연코 전국 왕릉을 순회하면서 느낀 점을 문학 화하는 일입니다. 물론 시간이 관권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일이 체크해하고 목록화해서 순회하고자 합니다. 아마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까지 일률적으로 기술했던 역사이론 외에도 살아있는 또 다른 문학차원에서의 왕릉문학이라는 계보가 정립되지 않을까 그 포부를 말씀 드려야 겠군요.

지금은 동구릉이나 사릉, 홍유릉 등 가까운 곳에 위치한 능들을 방문하고 있지만, 그 범위가 확장되면 지금 보다다는 더 효율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대감은 왕릉문학회에 속에 있는 회원들의 인문학적 정신과 삶의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결과물이 되어 가치 있는 삶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한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기고 갈 또 다른 유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은 것입니다. 자랑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 행보를 해 나갈 것입니다."

-상상해보는 질문인데...앞으로 10년 뒤 이충재 시인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여기까지 왔군요. 분명 유소년 적 꿈은 이룬 샘이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 성취된 꿈을 통해서 어떻게 더 소중한 일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시가 있어서 선생노릇도 했고, 언론의 초점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명예의 일부이지만 이름이 거명되기도 했으니, 이제는 그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금까지 읽고, 쓰고, 사유했던 모든 것들을 총 망라하여, 후배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고 갈까 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21세기 이 시대는 물질관에 인간관을 도적질 당해 버린 상태입니다. 그로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신종 정신질환에 시달려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의 멍에를 메고 매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제가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 조선왕릉     ⓒ 경기인터넷뉴스



-그 두가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첫째는 시를 통해서 치유자의 위치를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사명자의 마음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 작업을 통해서 일부 기부 행위를 하고 싶다는 비전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독서와 20여 년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일상철학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면서 가치 비전을 세워가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바로 저를 강의하는 삶으로 이끌고자하는 바람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거시적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출판계에도 일익의 디딤돌 역할 지게 되지 않을까 계획 중입니다. 계획은 왕성하되, 청사진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좀 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시킬까 생각중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이 계획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분들과의 긴밀한 동역이 선행될 때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동역자를 찾아 오늘도 곁눈질 하지 않고 정직한 글, 위로의 글, 바른 행위 하나 하나 체득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이충재 회장은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섰다. 어려운 소년시절과 불행한 청소년기를 거쳐 평범한 청년기를 보냈다. 글을 써야겠다는 내재 된 사고를 현실화 시켰고,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하루에 1~2권을 섭럽하는 독서의 달인이고, 독서한 책을 자심의 SNS에 발표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년이자, 시인이자, 독서와 문학을 분석하는 평론가다. 

올해 박인환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이했고, 귀천 한 지 60주기다. 그가 죽은 날 민윤기시인이 편저한 "박인환 전시집-검은 준열(峻烈)시인의  시대"에 첫 평론을 하면서 평론가의 길에 들어섰다. 서평가에서 문학평론가로서 입문을 한 것이다.

왕릉문학회를 이끄는 회장으로 그의 앞날에 새 생명 구석 구석을 비치는 봄볕 햇살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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