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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가 만난 사람(4)] 망우리 사잇길의 인문학 ‘그와 나 사이를 걷다’...김영식 작가
묘비명으로 쓰는 망우리공원 인문학...52명 근현대인물과 일반인 사연 소개
기사입력: 2015/12/07 [05:47]  최종편집: ⓒ 경기인터넷뉴스
한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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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가 만난 사람(4)] 망우리 사잇길의 인문학 ‘그와 나 사이를 걷다’...김영식 작가

-초중고 망우리공원의 아득한 추억...누워있는 이들을 연구하게 만들어
-2009년 초판에 이은 6년 만의 증보판...극작가 이광래 등 새로이 추가
-묘비명으로 쓰는 망우리공원 인문학...52명 근현대인물과 일반인 사연
-수필가, 번역가 활동...일어 번역 집필에 큰 도움 최근 ‘조선’ 번역발간
 

-프롤로그 

50대 중반에 들어선 내게 망우리고개와 공동묘지의 추억은 색다르다. 구리시 동구릉 경내 건원릉을 만년유택으로 찾은 태조(이성계)가 "오호라! 이제 근심을 잊었구나." 라 스스로 감동한 망우(忘憂)고개 즉 '근심을 잊은 고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민속학적 해석이다.     

 
▲ 김영식 작가     ©임윤식 시인

지명유래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추구한다. 동구릉과 인근의 왕릉에 물품을 조달하던 동쪽의 창고인 동창(東倉) 주변에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이 들어섰고, 망우리고개 역시 일제강점기 태조가 세운 조선의 맥을 끊겠다고 공동묘지를 조성했던, 어떻든 삶의 고뇌와 근심을 잊는, 고단했던 삶의 핑계를 덜어내는 8천여기의 묘지가 남아있는 곳으로 변했다.-1930년대 3만기에 가까운 무덤산이었다.-     

어릴 적 청량리에서 교문리로 넘어오는 길. 안내양의 빠른 목소리 “청량리 중랑교 망우리가요”가“차라리 죽어 망우리가요”로 들렸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의 속담을 따라 지난 10년간 망우리공동묘지를 찾아 그 핑계를 글로 푼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영식 작가(사진)다.     

그는 2009년 “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내놓았다. 지난 11월 20일 드디어 증보판 “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43명에서 53명으로 늘려 그들의 핑계를 늘렸다. 

그와의 인연은 8년 전으로 돌아간다. 인터넷매체 남양주투데이에 “망우리사색공원의 사자후(死者逅)”를 연재면서 글로서 먼저 만났다. 그는 월간 신동아에 망우리별곡을 연재하고 있었다. 글을 보면서 서로 교감을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2009년 봄 망우리공원에서 조우(遭遇)를 했다. 소주잔이 오가고 고교 1년 후배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망우리를 함께 고민하고, 어깨동무 관계로 이어간다.  그와 교문동 딸기원 허름한 선술집에서 만나 망우리를 이야기를 따따부따 해본다.(글쓴이 주)   

-김영식 작가와 망우리공원과의 인연은.   

4살 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왕십리 마장동을 거쳐 중랑구(당시는 동대문구) 중화동에서 초, 중을 마치고 상봉동으로 이사와 대학 졸업 때까지 살았습니다. 망우리공원과는 걸어서 이십여 분의 거리였죠. 여름방학 때 집에서 책만 읽다가 무료해서 혼자 망우리공동묘지를 걸어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느낌이 색다르게 강렬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와 차분히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자주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건 단 한 번의 경험이었고 이후로 저는 취직 후 이문동에서 살다가 결혼 후에는 자양동을 거쳐 개포동에서 자리 잡아서 망우리를 찾아갈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 2009년 '그와 나 사이를 걷다' 초판이 나오기 전 박인환 묘소를 찾은 김영식 작가(오른쪽)     © 경기인터넷뉴스

 

-수필가로서 혹은 일본문학 번역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작가로서 망우리공원과의 인연은?     

제가 수필가로 등단(2002)한 후, 망우리에 대해 수필 한 꼭지 쓰려는 생각에 이십여 년 만에 망우리공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숲과 나무가 울창한 시민의 공원으로 변했더군요. 그리고 많은 새로운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는 정리해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고 꾸준히 삼사 년 동안의 현장 및 자료 조사의 결과, 한 권 분량의 책이 만들어진 것이죠.    

-저도 인터넷매체를 통해 문인들을 조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월간 신동아에 연재한 김영식 작가의 망우리별곡이 많은 도움이 됐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연구를 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혹, 일본어 번역이 도움이 되지는 않았는지요. 

한철수 선배님도 그때 인터넷상에서 알게 되었죠. 그런데 문인 몇 명만 쓰시고 더 이상 진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마 계속 쓰셨더라면 필력이 대단하시니 겁이 나서 제가 먼저 그만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저는 부분에 그치지 않고 전체까지 나아가 결국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보냈네요. 그래서 이런 말을 서문에 썼습니다. “못나게 태어나도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저는 대학 때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망우리 근현대 인물에 관해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쓰다 보니 관심이 깊어져서 계속 그들과 그 시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된 것입니다. 최학송, 함세덕 등의 좌파 문학가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많아 이들을 정리하고 알리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지고 집중 탐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도 저는 일본 근대 문학 작품의 번역서를 몇 권 낸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료 중에는 일본어로 된 것도 많아 사료 접근이 용이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망우리공원의 주요 인물(1)...계용묵, 권진규, 김상용, 김이석(위) 노필, 문일평, 박승빈, 박인환(중간) 박찬익, 박희도, 방정환, 설의식(아래)     © 경기인터넷뉴스


  
-요즈음도 꾸준히 연구를 하고 있고, 일부는 전공자도 아닌 데 하고 시샘을 하는 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요.    

요즘은 저의 독서 방향은 대부분 망우리에 관련된 인물과 그 시대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망우리 인물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정판 준비 때는 새로 나온 책도 거의 다 봤습니다.    

서민의 자서전이라 해도 그 시대 이야기라면 무조건 읽어보죠. 아무래도 망우리 인물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 것도 읽어서 그 시대 상황을 많이 알아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사학자도 아니니까 아마추어라는 말을 듣기 싫거든요.     
 

-2009년에 발표한 ‘그와 나 사이로 걷다’ 초판에는 43명을 재조명했는데 이번 증보판에는 몇 명을 소개했나요.    

인물 숫자는 사실 왔다 갔다 합니다. 왜냐하면 합장묘도 있고 해서 헤아리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2006년 시점에 관리사무소가 파악하여 갖고 있는 리스트에는 16명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초판을 내며 43명으로 늘렸죠.    

그리고 출간 후 독자의 제보나 제가 검색해서 새로 알게 된 인물, 그리고 망우리에 있지만 개인 묘역인 인물도 추가하니 10여 명이 늘어났습니다. 정리하자면, 도합 52명입니다.

정확히 말해 무덤까지 있는 인물은 45명이고 비석만 남은 인물은 7명인데, 저는 무덤이 없어도 남은 비석은 의미 있는 글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모두 52명의 인물이 스토리를 전해준다고 말합니다.

▲ 망우리공원의 주요인물(2)...송석하, 안창호, 오긍선, 오세창(위) 유상규, 이광래, 이영민, 이영준 (가운데) 이인성, 이중섭,장덕수, 조봉암(아래)     © 경기인터넷뉴스



-이번 책을 통해 52명을 조명했다고 했는데 책에는 더 많은 이들이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13도창의군탑 등의 기념비(탑) 4개를 합하면 우리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창이 57개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아직 서민의 비명은 포함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자료 부족으로 쓰지 못한 인물도 몇 명 남아 있어 숫자는 아마 60여명까지 늘어날 듯합니다.    

책에 53명의 이야기라고 쓴 것은, 2012년에 비석과 함께 고향 벌교로 이장된 작곡가 채동선의 이야기를 개정판에도 그대로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유족에게 설명하고 이장을 만류했을 텐데 그게 참 아쉽습니다.   

-증보판에 소개하지 못한 인물도 더러 있을 것이고, 안타깝게도 망우리공원에 누어 있다가 이장한 분들도 있습니다. 아직 연구를 마치지 못한 인물도 있습니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대안을 제시한다면.      

이제는 망우리가 근현대사 박물관이 되었으므로 앞으로는 행정당국도 망우리의 문화자원 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심의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이장시에는 서민의 비석이라도 문화적 가치가 있으면 남겨 놓도록 권유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하겠죠.    

▲ 망우리공원 주요인물(3)...지석영, 차중락, 채동선, 최신복(위)최학송, 한용운,함세덕, 허위(가운데) 아사카와다쿠미, 13도창의군탑, 이태원천골합장묘, 명온공주(아래)     © 경기인터넷뉴스



-이번 책에서 중복된 인물 중 특별히 김영식 작가가 추천할 내용을 소개한다면.    

도산 선생은 1973년에 망우리에서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는데 그때 비석도 함께 이장된 바 있습니다. 지금은 부인과의 합장묘 앞에 새로운 비석이 서 있고 그 옛날 비석은 기념관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더군요. 그것을 이번에 망우리로 다시 옮기게 되었습니다.     

내년 2월쯤에 이전 공사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 이야기를 새로 추가했는데 이게 가장 특기할 만한 뉴스거리라고 봅니다. 아, 그리고 조봉암 선생은 2011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이것도 초판 이후의 일이군요.   

그리고 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에 관한 글도 많이 늘어났는데요, 초판 출간 이후 우연한 기회에 사이토의 손녀가 쓴 책의 복사본을 얻게 되었습니다. ‘두 조국’이라는 책입니다만 그곳에 사이토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해 사료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이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개된 인물 중에 ‘빛과 그림자’ 혹은 ‘실과 바늘’의 관계에 있는 이들은 누가 있나.  

방정환은 화장되어 홍제동 화장장에 있던 것을 후배 최신복이 나서서 망우리에 묘역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최신복은 그 후에 자신의 부모님을 방정환 아래에 모시고 그 부부도 그 아래에 묻혔습니다. 존경하는 선배와의 인연을 죽어서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늘 답사객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누구 옆에 묻히고 싶으며, 누가 당신 옆에 묻히고자 하는가, 라고.    

▲ 화가 이중섭 묘역     © 경기인터넷뉴스



그리고 세브란스 의전 초대 한국인 교장인 오긍선의 묘 아래에는 그의 제자이기도 하고 오긍선에 이어 세브란스 3대 교장을 지낸 이영준의 묘가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에 잠들고 있는 것이죠.    

또 하나,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73년에 강남으로 이장되었습니다만 1938년부터 이곳에 계셨습니다. 원래 선산이 평안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언에 의해 1936년에 먼저 이곳에 온 제자 유상규 옆에 묻히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전의 ‘실과 바늘’의 인연이 죽어서도 이어지는 걸 보면 가슴 뭉클하지 않습니까.    

-망우리공원의 인문학적 가치를 평가한다면.    

인문학은 문학, 사학, 철학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있으니 문학이 있는 것이고, 우리 근현대사가 있으니 역사는 당연하고, 삶과 죽음의 사색이 있으니 철학이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가히 최고의 인문학공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도심의 변두리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 인문학적인 화두를 던져주는 공간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아마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울시도 망우리의 인문학길 조성에 나선 것이죠. 이 인문학길은 명칭을 ‘사잇길’로 제안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딴 것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 그와 나 사이를 걸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면 자연스레 근심을 잊게(망우)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역사적인 면을 좀 더 부연하자면 망우리묘지의 사용 기간인 1933년에서 1973년의 40년간은 매우 의미심장한 기간입니다.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서 이처럼 치욕적이고 괴롭고 격동적인 시기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의 이야기가 여기 고인들의 비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2009년에 본서가 발간된 이후 망우리공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어떤 변화를 느끼시는 지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망우리 관련 글이 거의 없었습니다. 출간 이후로 지금까지 실내 강의와 현장 답사도 계속 진행한 결과, 이제는 많은 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량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상당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강의와 답사의 몇 가지 예를 들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나 서울시립대, 중랑문화연구소 등이 주관한 세미나, 인문학 강의 등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중랑구립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도 강의와 답사를 진행한 바가 있습니다.    

언론사 중에서는 지금까지 기사를 다루어 준 곳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국경제, 서울신문, 머니투데이, 오마이뉴스 등이 있었고 국영 K-TV에서도 30분 정도 나왔죠. 최근 개정판 출간 이후에는 한겨레신문 ‘인물’ 란에서 다루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초기라고 생각합니다. ‘망우리’라는 명칭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망우리공원 현재의 인문학적 가치를 모르는 이가 99.9%라고 봐야죠.
    

▲ 망우리공원 근현대인물 분포도     © 경기인터넷뉴스



-저자와 망우리공원에 관련된 입상과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일단 저서가 2009년에 문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것이 크겠고, 2012년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꼭 지키고 싶은 우리의 자연‧문화유산’ 부문에 응모하여 2등상인 산림청장상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2013년에는 서울연구원으로부터 서울스토리텔러 대상을 받았고요.     

그리고 2014년에는 서울시가 발주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수행한 ‘망우리공원의 가치제고’ 및 ‘망우리공원의 인문학길 조성’ 용역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내년에는 망우리에 인문학길이 완성됩니다만 그 세부적인 실행에도 일정 부분 관여를 할 예정입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단체와 앞으로의 계획은.    

시설관리공단과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공동으로 올해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에 답사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 물론 제가 안내를 하고요, 이는 내년에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상황에 따라 횟수를 더 늘릴 수도 있겠죠.     

그리고 망우리공원 관련 이런저런 사업도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망우분과위원회도 만들 생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실제 실행 여부는 내년이 되어 봐야 알겠죠. 마음만 앞서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고 우선순위도 있으며 숙성 기간이 필요한 것도 있으니 함께 논의하면서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일이라는 것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함께 나아갈 때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일부 정치인들이나 지역주민이 망우라는 이름이 무덤을 연상된다하여 지명을 바꾸자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중랑구나 구리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망우리공원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의 인식 변화가 시급합니다. 거창한 무엇을 짓거나 만들거나 하여 밖으로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일단 주민에게 망우리공원의 내용과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합니다.    

아직도 ‘망우’ 이름을 바꾸자는 주민이 있고 그에 영합하는 정치인도 있는 실정입니다. 한심한 일이죠. 600년이나 내려온 이름을 지금 시대 사람이 멋대로 바꾸겠다니 역사의 죄인이 될 법한 위험한 발상입니다. 일부 주민이 뭐라고 해도 사회지도층은 잘 설명해 줘야 합니다.     

아마 문제는 일단 먼저 지역 공무원들과 지역 의회 의원들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봐야죠. 그들 사회지도층에게 먼저 강의와 답사 안내를 하고 싶은데 전혀 요청이 없네요. 지역의 지도층이 책을 읽지 않고 현장도 오지 않는데 일반 주민이야 오죽하겠습니까요.    


▲ 안창호와 유상규의 인연을 설명하는 김영식 작가...스스로 망우리공원의 스토리 텔러로 나섰다.     © 경기인터넷뉴스


-에필로그    

김영식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4살 때 망우리공원과 가까운 중랑구 중화동과 상봉동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중앙대학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 미쓰비시상사의 서울지점에서 십여 년간 근무한 후 독립하여 일본어번역과 무역을 하는 작은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문학과 문화를 소개하는 블로그 ‘일본문학취미’ 운영하면서이다. 이 블러그는 2003년 문예진흥원 우수문학사이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라쇼몽(2008. 문예출판사)”, 구니키타 돗포의 “무사시노 외(2011. 을유문화사)”, 모리오가이의 “기러기(2012. 문예출판사)”. 다카하마 교시의 “조선(2015. 소명출판)” 등 7권의 번역서를 냈다. 이중 조선은 식민지 조선을 그린 일본인 작가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2002년에는 계간 리토피아를 통해 수필가로 입문을 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망우리공동묘지로 알려진 망우리공원을 인문학으로 푼 “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2009년에 발표하면서 그의 존재가 드러났으며, 망우리공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2015년 11월 20일 10년간 발품을 팔고, 정리한 증보판 “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발간하고, 한 숨을 고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김영식 작가는 이 사잇길을 계속 걸을 것이다. 망우리에 누운 이들의 모든 핑계가 무덤 밖으로 나올 때까지.    

-“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그와 나 사이를 걷다” 무엇을 실었나   

▲     © 경기인터넷뉴스

이 책은 도서출판 호메로스에서 출판했으며, 초판은 2013년 서울스토리텔러 대상과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올랐으며, 2012년에는 이와 관련하여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지정 “꼭 지켜야할 문화유산” 부문 산림청장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증보판은 총 3부로 나누었다. 1부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은 문화예술체육인 박인환(시인), 방정환(문학인), 이인성과 이중섭(화가), 권진규(조각가), 함세덕(극작가), 최학송(소설가), 채동선(작곡가), 차중락(대중가수), 이영민(야구인), 노필(영화감독), 김말봉(소설가), 김상용(시인), 김이석(소설가), 계용묵(소설가), 이광래(극작가) 등 16인을 소개했다.     

2부 ‘이 땅에 흙이 되어’는 독립운동가와 학계인사를 정리했다. 한용운(독립운동가. 문인. 33인), 박희도(33인), 다쿠미와 오토사쿠(한국의 흙과 나무가 된 일본인), 지석영과 오긍선(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 오세창(서화가), 문일평(사학자. 언론인), 박승빈(국어학자), 송석하(민속학자), 이경숙(MRI선구자. 사회운동가), 김호직(영양학자. 콩박사), 설의식(동아일보 편집국장) 등 12명의 삶을 재조명했다.   

3부 ‘한 조각 붉은 마음은’에서는 살아서 이념은 달랐으나 이곳에 모인 이들과 조선시대 인물을 소개했다. 안창호와 유상규(독립운동가), 조봉암(정치인), 삼학병(신탁통치 찬성 3인), 박찬익(애국지사), 장덕수(언론인, 정치인), 이병홍(반민특위), 명온공주(순조의 딸)와 김현근(영의정), 신경진(영의정. 신립의 아들), 허위(의병장)와 13도창의군, 독립운동가 서동일, 오재영, 문명훤, 서병호, 사광조, 오기만, 박원희 등 인물소개와 무연고 분묘의 유골을 모은 경서노산천골취장비, 이태원묘지무연고분묘합장비, 그리고 최근까지 국민강녕탑을 쌓고 있는 최고학 옹도 따따부따했다.    

부록이라 할 수 있는 책 마무리에는 일반인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적은 묘비문도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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