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구리시
[문화기획] 구리, '2014년 구리 동구릉 문화제'... 어가행렬 성료
왕릉을 찾아 인사하는 배릉(拜陵)...가장 작은 규모인 소가노부
기사입력: 2014/10/20 [07:31]  최종편집: ⓒ 경기인터넷뉴스
한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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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경기인터넷뉴스] 구리시와 구리문화원은 “2014 구리동구릉 문화제”의 일환으로 지난 18일 ‘어가행렬’을 재현했고, 동구릉 원릉에서는 시민백일장과 그림그리기 대회 등이 진행됐다.   
 
이 행사는 올해 세계문화유산등재 5주년을 맞이해 조선왕릉 동구릉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구리문화원, 한국문화재단, 문화재청이 함께 했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1)  행렬을 바로보는 시민들     © 오병학 기자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7왕과 10왕비 17위가 누운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이다. 2011년에 태조 건원릉, 18대 현종의 숭릉, 14대 선조의 목릉의 정자각이, 2013년에 태조 건원릉의 신도비가 보물로 지정됐다. 구리시는 2004년부터 동구릉문화제를 11년째 이어오고 있다.
 
-동구릉 어가행렬...시민 300여명 참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배릉(拜陵)조'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반드시 건원릉을 찾아야 하며, 선왕과 왕후의 산릉에 참배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오향대제 즉 정월초하루,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5대 명절에 태조 건원릉을 비롯한 각 능에 참배했다고 언급했다.
 
300여명이 참가한 어가행렬은 구리 시민을 대상으로 공개 선발 된 왕과 왕세자, 3정승과 문무백관 일부를 제외하고, 구리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참여했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2) 300명 구리시민이 참여한 행렬     © 오병학 기자


구리시 토평동에 거주하는 신동원(51세)씨와 인창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신중호(9세)어린이가 왕과 세자로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번 어가행렬은 "길인도(취타대 포함)-의장1-의장2-어가-수행행차-건원취타대-후행행차" 순으로 행진했다.   
 
-임금행차의 백미...각쟁도 재현
 
동구릉문화제의 어가행렬은 오전 11시에 구리광장을 출발해 12시에 동구릉 재실 앞에 도착했다. 행렬 이동 중에는 백성이 왕의 행차를 멈추고 자신의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는 ‘격쟁’도 재현했다.  
 
작년에 첫 선을 보인 격쟁은 건원대로 삼보아파트 앞에서 시행했다. 행렬 출발지인 구리광장과 도착지인 동구릉에서도 축제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연희단 팔산대의 신명나는 길놀이 한마당이, 동구릉에서는 젊은 국악단 ‘재비’가 우리 악기로만 풀어낸 퓨전국악도 공연했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3) 각쟁     © 오병학 기자


-어가행렬은 '노부((鹵簿)'...조선 최고 최상의 행렬
 
노부란 조선시대 왕실의 의장제도로 조회, 연회 등의 궁정행사와 제향(祭享), 능행(陵行) 등의 외부행차 때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동원된 각종 의장 물품과 그 편성과 운용제도를 말한다. 궁정의 의장(儀裝), 행차(어가행렬)를 노부라하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부는 그 규모에 따라 대장(大仗), 소장 혹은 대가(大駕), 법가(法駕), 소가(小駕)노부로 구분한다. 신분에 따라 세자(태자)노부, 왕비의장, 왕세손의장 등이 따로 마련했다. 그 용도에 따라 길(吉)의장), 흉(凶)의장, 황(黃)의장, 홍(紅)의장 등으로도 구분한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4) 의장기     © 한철수 기자


왕이 궐 밖으로 행차할 때 타는 수레를 가(駕)라고 하고, 궐내에서 타는 가마를 연(輦=덩)이라 했다. 가는 말이 끄는 것이고, 연은 사람이 어께에 메는 것이 원칙이나 거리에 따라 가를 사람들이 메기도 했다. 대가, 법가, 소가는 가의 규모에 따라 구별한다.
 
-어가행렬 기획...병조의 승여사 담당
 
왕족이나 귀족의 신분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의장제도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나 추정하나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기록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사에 문종 1년(1047)에 노부 정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의종 때 "상정고금예문"에 완비됐다고 전한다. 조선의 노부는 세종이 정비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됐는데, 고려보다 훨씬 세분화했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5) 동궁여의 왕세자(신중호 인창초 3년)     © 오병학 기자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종전의 모든 의장을 황제의 노부로 격상, 재정비했다. 조선의 노부의 관리와 운영은 병조의 승여사(乘輿司)가 기획하고 담당했다.
 
노부에 사용된 의장물품은 160여 가지나 된다. 의장의 용도에 따라 길의장에는 기치류(旗幟類), 무기류, 산류(傘類), 부채류, 당류(幢類), 장도류(粧刀類), 악기류 등이 주를 이룬다. 흉의장의 삽, 우보, 만장, 방상시(方相氏) 등은 국장(國葬)에만 사용했다. 황의장과 홍의장은 중국 관계 의식에서만 특별히 사용됐으며, 황제와 황태자의 격식에 따라 운용됐다.  
 
-종묘사직은 대가. 선농단은 법가, 왕릉은 소가노부로 행차

대가노부는 종묘와 사직의 제사의 행렬이고, 법가노부는 문소전(文昭殿. 4대 선왕과 왕비, 태조), 선농단(先農壇), 문선왕(文宣王. 공자) 제사와 열병, 무과시험을 참관할 때의 행차를 말한다.
 
소가노부는 능행(陵行) 등 기타 출타 시에 사용됐다. 이번 동구릉 어가 행렬은 소가노부에 해당 된다.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6)     © 한철수 기자


화려하면서 단정한 의장기(旗)는 상징적인 표식기능을 갖고 있으며, 자연물인 하늘, 해, 달, 산, 동물, 그리고 신인(神人) 등을 그려 넣은 왕실의 핵심 문양이다.
 
의장물은 기능에 따라 직접적인 권력의 표시하는 도끼, 칼, 창 등 군사적인 것과 그늘용이나 상서로운 상징으로 산, 부채 등도 등장한다. 또한 청각적인 상징인 북과 관악기로 구성된 고취악대의 연주를 통해 통치자의 절대적인 위치를 부각시킨다.
 
-왕의 행차, 여론수렴의 장...각쟁, 즉석과거 시험도 치러
 
왕의 행차는 나라의 권위를 나타내고 각쟁을 통해 백성의 고충을 들어주는 언로의 역할도 했으며, 즉석에서 과거시험도 치렀다.
 
대궐 밖으로 왕이 거둥할 때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 왕은 도성안 행차는 물론 경기도 밖으로 나가 능행차와 사냥 등으로 몇 달씩 머무는 일도 있었다.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7) 길을 인도하는 취타대    © 한철수 기자


왕의 행차는 백성들에게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인 동시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행차 길에 왕은 꽹과리를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행위를 각쟁(角爭)이다. 각쟁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왕의 행차를 막은 불경에 해당하므로 의금부에 불려가 볼기를 미리 맞아야 한다.
 
-왕은 어떤 옷을 입는가
 
왕은 규모 따라 면류관과 구장포, 원유관과 강사포, 융복(전투복) 등을 입었다. 이날 행차에는 어깨에 사조룡을 새긴 곤룡포를 입었고, 익선관을 썼다.
 
임금의 복식 또한 규모에 따라 바뀐다. 대가에는 면류관과 구장복을, 법가에는 원유관과 강사포를, 소가에는 왕의 전투복인 융복을 주로 입었다.
 
-왕의 행차에 1만 명이 동원
 
왕이 행차할 때는 왕실 또는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나 동원된 의장물의 배치순서를 그려놓은 반차도에 따라 인원과 의장물의 자리와 순서를 미리 정했고, 행차에 필요한 의장물의 규모는 기본 형태에 따라 실시했다. 그 규모도 중국 황제의 행차에는 2만명이, 조선조에는 그의 절반인 1만명이나 동원됐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8) 길을 인도하는 마상군병 © 오병학 기자


행렬의 맨 앞에는 완전무장한 수 백 명의 군사가 갑옷과 무기로 행차를 보호하고, 두 번째 행렬은 화려한 깃발과 의장용 창검을 든 의장행렬이, 세 번째 행렬에는 어가를 탄 왕이, 왕의 수레 앞뒤에는 커다란 해가리개(산)와 부채, 취타대를 배치했다. 그 뒤로는 종친과 문무백관이 왕을 수행하였고, 행렬의 맨 뒤에는 선두와 마찬가지로 군사들이 따랐다.

또한, 행렬의 앞뒤에서 행진하는 군사 외에 보이지 않게 숨어서 왕의 행차를 호위하는 병사들도 있다. 궁궐부터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곳마다 매복병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연락병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궁궐과 왕 사이에 수시로 오가는 연락을 담당했다. 왕은 궐 밖에서도 중요한 국정 사안은 직접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를 받는다.
 

▲  2014 동구릉문화제...어가행렬(9)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은 왕 ©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감찰관들은 매복병과 연락병들이 근무에 충실한 지를 수시로 점검하고, 왕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공식 행사를 마친 후 환궁했다.  
 
대궐로 돌아온 왕은 행차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관련자들에게 상을 내리고, 행차 도중에 직접들은 민원들을 해결했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는 나라의 절대 권력자와 현장의 백성들이 직접 만나는 축제의 장이었다. 
  
                             동/구/릉/문/화/제/이/모/저/모

 

▲ 2014 동구릉문화제... 행차를 마친 왕과 왕세자    © 한철수 기자
▲  2014 동구릉문화제...공연을 관람하는 왕과 왕세자    © 한철수 기자
▲ 2014 동구릉문화제...가을 단풍 속에 공연을 기다리는 관람객      © 한철수 기자
▲ 2014 동구릉문화제...구리문화원 김문경 원장의 개회사 ©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2014 동구릉문화제...박창식 의원의 축사 ©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2014 동구릉문화제...백일장에 참여한 시민들 ©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  2014 동구릉문화제...그림그리기에 열중인 어린이©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 2014 동구릉문화제...재비의 공연 ©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2014 동구릉문화제...재비의 공연 © 한철수 기자     © 경기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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