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수호의 전사, 서형열 경기도의원 스러지다.

7일 밤 숙환으로 별세...10일 ‘경기도의회장’으로 엄수

송영한 기자 | 기사입력 2020/06/08 [10:54]

독도 수호의 전사, 서형열 경기도의원 스러지다.

7일 밤 숙환으로 별세...10일 ‘경기도의회장’으로 엄수

송영한 기자 | 입력 : 2020/06/08 [10:54]

 

[구리=송영한 기자]그에게 전화를 걸면 언제나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로 시작되는 ‘독도는 우리 땅’이 흘러나왔다. 이제 그의 컬러링은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됐다.

 

서형열 경기도의원(민주당 구리1.65세)이 7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 故 서형열 경기도의원  ©경기인터넷뉴스

 

불같은 의지로 일본의 심장부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던 장골의 그도, 병마의 산을 넘지는 못했다.

  

소년 시절 김대중의 연설을 듣고 정치인의 꿈을 키웠던 서형열 의원은 2010년 5전6기의 신화 끝에 연이어 세 번의 도의원 배지를 달았다. 대한민국 독도지킴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2000년 전가족의 본적을 독도로 옮길 만큼 독도사랑에 열정적이었던 서형열 의원은, 전국적으로 해마다 2월22일이면 다케시마의날 일본발 뉴스에 독도수호를 외치는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주인공이다.  

 

서형열 의원은 그의 저서 ‘아무리 넘어져도 일어나면 다시 걸을 수 있다’에서 “정치란 본인의 성실함을 시민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 성실함을 인정받기 위해 임기 내내 태극기를 단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시민의 소리를 들었던 정치인이었다.  

 

30대의 나이에 첫 출마를 한 뒤 출마가 직업(?)이 되다시피 한 그는 무려 다섯 번의 고배를 마시고, 이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5년 동안 정치적금치산자가 돼 출마 자체가 봉쇄 되는 등 시련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오직 한 우물을 파는 집념으로 도의회에 입성해 건교위와 안행위 등 굵직한 상임위에서 활동했고 초선이면서 의장에 도전에 단 2표차이로 낙선해 ‘서두표’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3선에 성공한 뒤로는 2019년에는 경기도의회 예산결산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유력한 후반기 의장으로 물망에 올랐었다.

 

지난주 서 의원의 병실을 방문해 명예의장증을 전달한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은 "장의위원회와 장의 집행위원회는 고인을 명예의장으로 각별히 예우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고인의 장례는 ‘경기도의회장’으로 치러지며, 영안실은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장례식장(2호)이고, 발인은 10일 7시다. 이후 경기도의회(수원)운동장에서 영결식을 마친 후 구리시립묘지에 유해를 안장할 예정이다. 

  

故서형열 경기도의원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숙기 여사와 외동딸 서지혜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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