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구리시 출신 독립운동가 , 노은 김규식 선생 89주기 추모제 열려

태어난 집터에 표지판, 명예도로명부여, 명예시민증 전달

한철수기자 | 기사입력 2020/04/20 [18:11]

[특집] 구리시 출신 독립운동가 , 노은 김규식 선생 89주기 추모제 열려

태어난 집터에 표지판, 명예도로명부여, 명예시민증 전달

한철수기자 | 입력 : 2020/04/20 [18:11]

     

[구리=경기인터넷뉴스] 지난 18일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281번지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를 펼쳤다. 이곳에서 태어난 노은 김규식 선생의 집터에서 89주기 추모제가 진행됐다.

 

선생의 생가 터에 표지석 제막식과 사노동 281번지 일대에 <노은 김규식 길> 명예도로명 부여식, 유가족 대표에 명예구리시민증 수여식도 함께해 값진 행사가 됐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생가터 표지판 제막식     ©구리시 정훈철

 

 

 

이날 추모제에는 안승남 구리시장, 윤호중 국회의원, 임창렬 경기도의원, 임연옥·양경애 구리시의원, 이용갑 보훈향군협의회장, 장수용 구리시노인회장, 유성연 여성단체회장, 13도창의군기념사업회추진준비위원, 유가족(손 김건배, 손부 이윤화 외 20여명), 마을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오후1시부터 진행된 추모제는 구리시 복지정책과가 주관했으며, 정경학 팀장의 사회로 국민의례, 김진희 과장이 선생의 약력소개, 일동배례, 헌화, 명예시민증서 수여에 이어 안승남 구리시장, 임연옥 구리시의회 운영위원장, 윤호중 민주당국회의원 순으로 추모사를, 하늘소리 중창단의 추모공연으로 1부를 마쳤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 유족대표와 구리시 관계자   © 구리시 정훈철

 

 

 

이어 2부에는 선생의 생가터 표지판 제막식, 무궁화 기념식수, 명예도로명 부여식, 만세삼창, 기념촬영 순으로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됐다.

 

-노은 김규식 선생을 기리는...구리시 주요인사의 추도사

 

안승남 구리시장은 우리민족이 나라를 잃은 설움을 겪고 있을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이던 노은 김규식 선생님의 순국 89주기를 맞는 날이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시다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생 내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고 했다.

 

이어 구리시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국가보훈처가 아직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유해의 봉환(奉還)을 앞장서서 추진하고자 한다. 올해 유해를 모셔와 구리시립묘지에 가족묘역을 조성할 예정이다. 내년은 선생 서거 90주년이 된다. 오늘보다 더 뜻 깊은 추모제가 될 것이다.”고 비전도 제시했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안승남 시장의 추모사  © 한철수 기자

 

 

 

임연옥 구리시의회 운영위원장은 매년 실내에서 진행하던 추모제를 선생의 생가 터에서 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오로지 숭고한 애국정신과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산화하신 선생의 뜻은 과거를 잊는 것을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선생의 독립 정신이 영원히 후손에 물려주자.”고 추도했다.

 

윤호중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노은 선생의 생가 터에 보훈시설을 설립한 구리시의 노고에 감사한다. 선생은 군대해산과 더불어 철원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3도창의군 군사장 허위부대에 합류했다. 허위의병대의 별동대장의 역할을 맡아 서울 남산에 있었던 일제 통감부를 공격을 할 때 큰 역할을 한 분이다. 13도 창의군 서울 탈환작전은190712월부터 19082월까지의 일이다. ” 고 선생과 의병의 인연을 말했다.

 

또한, “이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선생과 가족은 중국(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마침 13도창의군 1만명 집결지가 지금의 구리시 수택동 한강변으로 알려진다. 구지옛생활연구소 한철수 선생의 제안으로 <13도창의군기념사업회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기념물 설치 등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 노은 김규식 선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 덧 붙였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윤호중 의원의 추모사  © 한철수기자

 

 

 

-노은 선생 서거 89주기 세 가지 감동...생가터 현충시설 지정, 명예시민증, 길 이름

 

이날 행사는 세 개의 감동이 있었다. 첫 번째 감동은 노은 선생의 장손 김건배와 손부 이윤화에게 명예시민증서를 수여했다. 손자 내외는 안산시 단원구에 살고 있다. 명예시민증서는 관계부서와 구리시, 구리시의회가 독립유공자 유족에 대한 예우풍토를 조성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수여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감동은 선생의 생가 터에는 세운 표지판이다. 구리시와 관계부서의 노력으로 작년 1212일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됐고, 보훈처의 지원으로 기념비를 세우게 됐다. 이날 제막식을 거행 한 것이다. 지정번호는 <5-1-37>이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명예구리시민증서를 받는 김건배 장손  © 한철수기자

 

 

 

기념비 바로 옆에 무궁화를 기념식수로 심었다. 이 나무는 선생의 별명이 <호장군>으로 선생의 뜨거운 나라사랑의 마음을 무궁화 뿌리에 새기기 위함이다.

 

세 번째 감동은 <노은 김규식 길>이다. 구리시에 인명이 들어간 최초의 길이다. 구리시 사노동 281번지 일대 편도를 선생의 길로 정했다. 이 길을 거닐 때마다 선생의 독립운동의 길을 따르는 마음을 새기라는 의미다.

 

-노은 김규식 선생은 누구인가

 

김규식(金奎植) 선생은 1882115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사노리 281번지(안말)에서 김영선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노은(蘆隱)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갈대밭에 몸을 숨긴다>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이명)은 서도(瑞道), 별명은 호장군(虎將軍)이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노은 김규식 길   © 한철수 기자

 

 

 

-스무 살에 대한제국 군대 입소...13도 창의군 참여 서울탈환 작전 선봉장

 

선생은 스무 살이던 19021월에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입교를 했고, 이듬해 육군 시위대 부교, 육군연성학교 조교로 있다가 부위(副尉) 지금의 중위로 근무했다. 1906년 제대를 한 후 강원도 철원 등지에서 의병 활동에 참여했다.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경기북부 의병장 허위(許葦. 호가 왕산)를 만나 정미의병(丁未義兵)으로 알려진 13도창의군에 합류한다.

 

13도창의군(倡義軍)은 전국 13개도의 의병장들이 참여한 대규모 의병봉기로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를 당하고, 군대도 강제 해산하게 된다. 이에 총대장 이인영, 군사장 허위 등은 13도에서 1만 명이 모여 서울탈환작전을 꾀했다. 창의군은 남산에 있는 일제 통감부가 목표였다. 이때 김규식 선생은 밀정(密偵. 스파이)으로 공격거점을 확보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13도 창의군 서울 진격 모형도  © 경기인터넷뉴스

 

 

 

1908228(양력) 드디어 허위의 부대 300명 선발대가 진격에 나선다. 창의군의 진격은 흥인지문 외곽에서 막힌다. 후발대가 일군에 막히고, 일본군대의 현대화 된 중화기의 화력, 무기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 진격작전은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전사(戰史). 13도 창의군은 뿔뿔이 흩어져 의병 활동과 만주, 미주 등으로 이주해 한일합병 이후 독립운동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본보 2019. 2. 22http://www.ginnews.kr/41733망우리공원, 13도 창의군과 의병장 허위기사 참조)

 

-김규식 일경에 잡히고 만주로 이동...본격 독립, 교육 활동에 힘써

 

노은 선생은 13도창의군 서울진격작전 실패 이후 강원도 철원과 춘천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084월 인천에서 붙잡혀 이해 8월에 15년 선고를 받는다. 1910년 양력 9월에 은사(恩赦) 즉 한일합병 기념으로 석방된다.

 

이후 1917년 동구릉 산림순시원과 목릉 총감독관(능참봉격)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19년 소작인조합 조합장으로 있다가 1920년 내란죄로 기소가 된다. 이는 3.1만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19207월 만주로 망명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참여하게 된다. 북로군정서는 북간도에서 서일(徐一) 등의 대종교인들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대한군정회대한군정부대항군정서>로 개편한 단체다. 삼일운동 후 임시정부를 서로군정서로 대한군정서를 북로군정서라 불렀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북로군정서 사령부 터  © 국가보훈처

 

 

 

1920년 그의 군대(의병)경력 등으로 북로군정서 1연대 1대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해 일본군 전위부대를 격파하는 큰 공을 세운다. 이후 김좌진이 세운 북로군 간부 양성소인 <사관연성소(士官鍊成所)>의 교관으로 활동했다.

 

이듬해(1921) 3월 김좌진. 이범석 대한독립군단을 제외한 대부부의 군대는 연해주로 대거 이동을 한다. 이때 선생은 총사령으로 진두지휘로 1,400명의 <대한(사할린)의용군>을 조직한다. 선생은 홍범도, 이청천과 참모부원으로 발탁된다. 그의 군사적 능력은 여기서도 발휘 된 것이다.

 

이해 6월 사회주의자들 간에 통수권을 놓고 벌어진 소위 <자유시참변(=흑하사변)>으로 내부총질을 해 독립군 960명이 전사하고, 1,800여 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어 소련군에 강제 편입되는 검은 역사가 있었다.

 

 

 

▲ 김규식 선생 89주기 추모제 ... <김좌진은 영락하고 김규식은 다시 활동한다>는 매일신보 기사((1924년 10월 12일)  © 한철수 기자

 

 

 

-고려혁명군 가입 ... 2세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다가 동료의 총에 서거

 

선생은 이 참변 후 반공주의자로 돌아선다. 1922()만주로 돌아와 김좌진 등과 재기를 다지려 노력했으나 예전 같지 않았다. 지방관헌에 의해 무장해제가 되자, 동만주 중심인 연길(延吉)로 거점을 옮기고 고려혁명군에 참여한다.

 

고려혁명군은 병농일치(兵農一致)를 추구해 농사를 짓고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소련령으로부터 비밀리에 무기를 구입해 무장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했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유족들의 헌화와 묵념  © 구리시 정훈철

 

 

 

1925년에 김좌진·김혁 등이 북구 영안현(北溝 寧安縣)에서 민족주의 대표를 망라하여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자 가담해 활동했다.

 

1926년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한 독립투쟁을 위하여 각계의 혁신적인 대표들이 모여 양기탁을 위원장으로 하는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이 동년 45일 길림성 영남호텔에서 조직되자, 그 중앙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했다.

 

당시 조직원은 15백여 명에 달했다. 선생은 장기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2세 국민들의 교육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연길에 학교를 설립하고, 그 운영 문제를 협의차 1931410일 주하현(珠河縣)으로 가서 최악, 홍진, 신숙 등을 만났다.  

 

 

▲ 제89주기 김규식 선생 추모제... 도로표지판  © 구리시 정훈철

 

 

 

이때 공산주의로 전향한 최악(崔岳), 독립군의 호장군(虎將軍)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를 제거하도록 사주했다. 노은 선생은 자유시사변 이후 자신들과 이념을 달리했기에 제거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던 그는 공산계열의 동족인 일당에 의하여 이역 땅에서 무참한 최후를 마쳤다. 선생의 나이 50세였다.

 

-글을 마치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2011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으며, 구리시와 구리문화원에서는 2012년부터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이번 89주기에 생가 터가 현충시설로 선정됐고, 그의 거리가 생겼다. 또 올해 안에 이역만리(異域萬里)에 묻힌 선생의 유해(遺骸)를 모셔와 고향집 근처에 묻는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과 유족에 대한 큰 예우(禮遇)는 지나쳐도 모자란 것이다.

 

구리시에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강덕(애족장), 여성의병 윤희순(애족장) 그리고 13도창의군 집결지도 있다.

 

 

▲ 제89주기 김규식선생 추모제...생가터 표지판  © 구리시 정훈철

 

 

망우리공원에는 독립지사 한용운(대한민국장), 오세창(대통령장), 문일평(독립장), 방정환(애국장), 오기만(애국장), 유상규(애족장)의 묘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유관순(대한민국장)의 유해 합장묘, 안창호(대한민국장) 묘터도 있다. 이제 관심을 크게 돌려야 할 것이다

 

*본고는 구지옛생활소을 운영하는 한철수 보도위원의 글입니다. 인용할 때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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