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건원릉, 마스크 쓰고 청완예초의 치러

코로나19 예방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빗장을 걸고 진행

한철수기자 | 기사입력 2020/04/07 [07:23]

[화보] 건원릉, 마스크 쓰고 청완예초의 치러

코로나19 예방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빗장을 걸고 진행

한철수기자 | 입력 : 2020/04/07 [07:23]

   

 

[조선왕릉=경기인터넷뉴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 건원릉에서는 매년 한식(寒食)이면 억새를 베는 청완예초의(靑薍乂草儀)를 공개로 실시했으나 올해는 코로나19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비공개로 지난 5일 오전에 치렀다.

 

이 의식은 20096월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 2010년에 제의를 복원했으며, 매년 한식에 억새를 베는 예초(刈草) 의식과 이를 태조에게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지내왔다. 일반에게 보여주는 공개행사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작년 공개 예초의 사진  © 문화재청

 

 

지난 10년 동안 격식에 맞게 진행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 조선왕릉 동부지구관리소(소장 최신영)는 비공개 약식 행사로 결정하고, 봉분의 억새를 베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조용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

 

올 예초의는 조선왕릉 동부지구관리소 박상오 주무관이 능침(陵寢)을 살펴보는 봉심(奉審) 수행을 했고, 직원 5명이 예초를 베는 의식을 담당했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예초의 전날 건원릉 모습  © 한철수기자

 

 

한식일 오전 10시 예초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건원릉 능침에 모였고, 예초를 알리는 국궁사배와 능침을 돌아보는 봉심을 했다. 봉심을 마친 예초꾼들은 봉분위로 올라가 억새를 두 시간 정도 베므로 의식을 마쳤다.

 

동부지구관리소 최신영 소장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약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예년과 같지는 않지만 의식이 의식이니 만큼 경건하게 잘 마쳤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이 되어 조선왕릉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편안히 찾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예초군과 봉심수행, 집례  © 한철수 기자

 

 

이날 행사에는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진행하는 진풍경을 보였으며 이 또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겼다.

 

건원릉 봉분의 억새풀은 2008년 씨를 받아 모종을 내 동구릉 내 양묘장에서 키우고 있으며, 억새풀이 부족할 때 이를 떼와 보식(補植)을 한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마스크를 쓴 예초꾼  © 한철수기자

 

 

건원릉은 태조의 무덤으로 1408524일 승하(昇遐. 왕의 죽음을 일컬음)하고 99일 이곳에서 국장(國葬)을 마쳤다.

 

조선의 모든 왕릉은 잔디로 떼로 썼으나 건원릉은 억새로 덮였다. 이는 태조의 말년과 연관이 있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 ....능을 살피는 봉심  © 한철수기자

 

 

-두 차례 왕자의 난과 함흥차사

 

한양에서의 무인정사(戊寅定社)라 부르는 1차 왕자의 난으로 자신의 충신인 정도전, 남은, 심효생과 강씨 소생 방번, 방석(태조의 8. 당시 세자)과 사위 이제(李濟. 경순공주의 배필)를 잃는 아픔을 겪고, 재위 7년 만에 둘째 아들 방과(태조의 2. 정종)에 선양(禪讓)한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2년 뒤 개성에서 방간(태조의 4)과 박포가 주도한 2차 왕자의 난이 벌어진다. 정종은 동생 방원(태조의 5)을 왕세제로 삼고, 이어 왕위를 양보한다. 이를 지켜본 태조는 상심이 컸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함흥본궁도  © 분화재청

 

 

그래서 고향인 함흥으로 가 내려오지 않는다. 태종은 안달이 났다. 이유는 태조가 국새(國璽)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태종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도장을 되돌려 받아야 했다. 태종은 태조와 친했던 신하를 함경도로 문안사를 보냈다. 이들을 차사(差使)라 했다.

 

야사에는 태조에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희대어(稀代語)를 낳았고, (태종), 상왕(정종), 태상왕(태조) 3명의 왕이 현존하는 희한한 상황이 된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  © 한철수기자

 

 

이때 태조는 함경도 일대에 있는 4대조의 능을 살피며 내심 내 괜한 걱정을 했구나. 아버지가 계신 이곳에 묻혀야겠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결국 자초(무학)대사의 설득에 한양으로 돌아온 뒤 창덕궁 별궁 수창궁에 머문다.

 

-태조가 미리 정한 무덤은 강씨 부인 옆

 

태조에게는 향처(鄕妻)인 한씨 부인과 경처(京妻)인 강씨 부인이 있었다. 한씨 부인은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죽어 조선 최초의 국모는 강씨 부인이 자리한다. 하지만 강씨 부인도 왕비가 된지 4년 만에 승하한다.

 

시름에 찬 태조는 지금의 덕수궁 부근 영국대사관 자리에 강씨 부인을 장례를 치르고 정릉(貞陵)이라 부른다. 이 일대가 정동(貞洞)이 된 것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  © 한철수기자

 

 

태조는 강씨 부인의 옆에 자신이 묻힐 능터를 정한다. 왕이 살아서 묻힐 곳을 정하는 곳을 수릉(壽陵)이라 한다. 사삿집에서는 가묘(假墓)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방원이 왕좌에 오르자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태종은 아버지의 국장을 마치고 생모인 신의왕후 한씨를 유일의 왕비로 삼고, 신덕왕후 강씨을 후궁으로 삼고 무덤을 지금의 성북동 정릉(貞陵)으로 옮긴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  © 한철수기자

 

 

-내 무덤에 억새를 덮어다오

 

왕좌 7년 상왕 2년 태상왕 8년 파란만장한 삶을 누렸던 태조는 1408524일 창덕궁 별전인 수창궁(壽昌宮)에서 74세의 일기로 생을 마친다.

 

태조는 자신이 묻히고 싶었던 곳이 두 곳이 있었다. 첫째는 함경도 조상의 능 옆이요. 또 하나는 스무 살 아래인 강씨 부인 옆이다. 두 곳 다 불가 한 것을 알게 된 태조는 죽기 전까지 상심이 컸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  © 한철수기자

 

 

그리고는 상왕인 정종, 주상인 태종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으면 고향땅 흘과 억새풀이라도 덮어다오고려를 호령하고 여진족과 왜군을 벌벌 떨게 했던 신궁(神弓)이자 명장이자 조선의 개국왕은 쓸쓸하게 생을 마친 것이다.

 

태종은 아비의 마지막 유언을 이행해 건원릉은 전 세계 왕릉 중 유일하게 억새를 심었고, 동구릉은 이를 농사를 짓는 듯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 2020 건원릉 청완예초의  © 한철수기자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은 조선의 궁궐과 왕릉의 안내해설도 28일부터 중단하고 있으며, 박물관과 전시관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또한, 4월까지 예정되었던 궁궐과 조선왕릉 행사와 제향은 취소 또는 잠정 연기한 상태이며, 추후 코로나19 진정 상황에 따라 행사별로 시행 여부와 시기를 다시 확정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궁능유적본부는 누리집(http://royal.cha.go.kr)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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