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웅박사 교육칼럼] 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를 생각한다

이철웅(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 기사입력 2020/03/26 [15:07]

[이철웅박사 교육칼럼] 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를 생각한다

이철웅(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 입력 : 2020/03/26 [15:07]

 

최근 언론보도는 ‘코로나 19’라는 세기적 대재앙에 앞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구촌의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원지였던 중국의 사태나 최근의 이탈리아 사태를 보면서 평소 건강과 의료체계에 대한 사전의 준비가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 이철웅 박사     ©경기인터넷뉴스

 

그 준비에는 의료에 관한 사회적 인프라 등이 포함된 물량적 의료체계를 사전에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이와 더불어 구축해야하는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인적 자원과 이를 활용하는 리더십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그 어려움을 차츰 극복하여 점차 안정화 추세에 이르고 있어 외신이 우리 사회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좀 더 노력해서 원천적 소멸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종교집단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막무가내로 집회 내지는 종교행사를 계속하여 사회의 빈축을 사기도 하는 현실이다. 종교는 신을 위하거나 성직자들을 위하기보다는 인류의 공동선과 행복 추구권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특히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주장이 마치 신도들을 위하고 신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고 설교하는 장면은 서글픈 마음마져 들게 한다.

 

심리학 용어에 ‘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Robin Stern)에 의해 사용된 용어로,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1944년 작 '가스등'(Gaslight)이라는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인 팔라는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남편 그레고리의 계략에 의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 남편이 집안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의 가스등을 켤 때마다 폴라는 자신의 방에 있는 가스등이 어두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이를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불안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남편은 이를 계속해서 무시하면서 폴라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결국 그녀는 남편의 말대로 자신이 미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가스등 효과는 상대방의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자신의 조종과 영향력 아래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심리적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조종자가 만들어 놓는 상황과 설득에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고 반문을 제시하던 피해자가 나중에는 점차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를 요약하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인 것이다.

 

그러나 가스등 효과에는 가해자에 의해 일방적 행동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이 상황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일어나는 심리적 상호작용 내지 인간관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자신을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권위를 부여하는 피해자의 무의식적인 용인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가스등 효과는 심리적으로 나약한 부류에서 일어나기 쉽다. 특히 세상에 어려움이 많이 일어날수록 사이비 종교내지 지나친 종교사상이 일어나는 현상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요구되며, 사회구성원 간의 건전성과 신뢰성 구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마태 16장 26절)”는 구절이 있으며,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법정스님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분명 이야기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해하거나 위협을 주는 어떤 행동도 종교행사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종교행위가 전염병을 전파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분명 죄악이다.

 

전염병 때문에 종교행위를 금지한 국가는 서방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우리나라도 성당이나 불교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종교적 집회를 자중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개신교 가운데 일부 집단에 의해서 정부의 행정 권고내지 행정 명령을 어기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이번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은 처음에는 좀 서투른 대응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세계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외국 언론에서 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심지어 자존심이 강한 외국의 지도자들도 한국의 실적과 자신 나라의 실적으로 비교하면서 발표하는 외신을 접하다보면 이렇게 작고 가난했던 나라가 언제 이만큼 성장했는지 하는 뿌듯한 마음이 갖게 되는 것은 나만의 심정이 아닐 것이다.

 

외신을 외국 사이트에서 확인하다보면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 일부 언론의 맥이 같은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이 시국은 비상사태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비판적 시각보다는 긍정적 시각 내지 중립적 시각에서 언론을 운영하여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하는 것이 매스컴의 의무일진데, 이런 사회적 의무를 포기하는 집단이 존재하고 그 구성원 가운데 이른바 이 나라의 지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슬기롭게 잘 처신하고 있다고 본다. 이 상황에서 생필품 사재기도 없으며 자발적으로 위험 지역에 뛰어들어 묵묵히 봉사하는 의료진 등, 그리고 상황을 대비하여 불철주야 사전 준비했던 의료공무원들과 관계제약사들의 놀라운 대응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이 가능한 대응이었다는 외신의 평가를 보면서 작은 위안을 가지며 평생 교육현장에 진력한 자신의 마음을 위안해 보면서 우리사회가 보다 정신적으로 건전하고 서로를 도우며 상생하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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