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이이화 선생’ 역사가 되어 스러지다.

향년 84세..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역사의 대중화 이끌어

송영한 기자 | 기사입력 2020/03/18 [23:00]

한국사 이야기 ‘이이화 선생’ 역사가 되어 스러지다.

향년 84세..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역사의 대중화 이끌어

송영한 기자 | 입력 : 2020/03/18 [23:00]

 [구리=경기인터넷뉴스] 주류 역사학자들의 편견을 깨고,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한국사를 저술해 역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18일 오전 11시9분 향년 8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대구 태생(1937년)으로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대학 문예창작과 중퇴한 학력이 전부인 선생은, 역사학부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한 고증 작업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사관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2007년 11월11일 가수 조성모와 김병지 축구선수 등과 함께 '고구려역사기념관 건립 구리시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이이화 선생(가운데)   © 경기인터넷뉴스


 특히 선생은 동학농민전쟁과 고구려 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1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을 맞는 해에 역작 ‘한국사 이야기’ 집필을 시작해, 만10년 후인 2004년에 22권을 완간하는 집념을 보였다.

 

선생은 한국사 이야기는 “민족·민중·생활사에 중점을 두고 정치·경제 중심의 역사보다 생활사 등을 조명했다.”며 “민족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민중의 고통에 대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했다.”라고 집필 방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때까지 금기로 돼 있던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사를 수용해 ‘반 쪼가리 역사’를 극복했다는 평가도 받았으며,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으로, '병자호란'을 '조청전쟁' 바꾸는 등 육십갑자를 삽입한 도식적인 용어를 배척했으며 한국과 조선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구려 역사에 대해 선생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역사 도둑질’이라고 통렬하게 질타하면서 고구려 문제는 고대사 문제가 아니고 철저하게 ‘현대사의 문제’라며 중국의 야욕을 꿰뚫는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선생은 남한에서 고구려 유물이 제일 많이 출토되어 고구려의 도시로 명명된 경기도 구리시에 거주하면서 ‘고구려 역사문화재단’ 창립과 '고구려역사기념관‘ 건립에 앞장섰다.(사진)

 

또한, 박근혜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사태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노구를 이끌고 앞장서서 정부를 준열하게 꾸짖었다.

 

선생은 생전에, 대표작인 ‘한국사 이야기’를 비롯해 허균의 생각ㆍ이야기 인물 한국사ㆍ한국의 파벌ㆍ녹두장군 전봉준 ㆍ민란의 시대 등 170여 편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또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ㆍ역사문제연구소 소장ㆍ고구려역사문화재단 상임공동대표ㆍ홍역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제1회 녹두대상ㆍ제1회 임창순 학술상ㆍ제15회 단재상 학술부문ㆍ1993년 심산상 등을 수상했다.

 

선생의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2층 4호 분향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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