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특집(3)] 망우리공원, 기미만세운동 민족대표 3인의 명(明)과 암(暗)-1

민족대표 33인중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묘역에서 만나는 그들의 삶과 독립의 의미

한철수기자 | 기사입력 2019/03/04 [16:45]

[3.1절 100주년 특집(3)] 망우리공원, 기미만세운동 민족대표 3인의 명(明)과 암(暗)-1

민족대표 33인중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묘역에서 만나는 그들의 삶과 독립의 의미

한철수기자 | 입력 : 2019/03/04 [16:45]

 

[3.1절 특집=경기인터넷뉴스] 올해는 삼일만세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100년의 여정을 회고하고 그 뜻을 기리고, 미래 100년의 희망을 설계하는 해이다.

 

100주년이란 큰 의미도 있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구한말의병, 기미년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를 찾아 발굴하고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행사로 전국이 후끈 달아오른다

 

 

▲ 망우리에 누워있는 민족대표 3인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 경기인터넷뉴스


 

구리시 아차산 망우리공원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3인이 구리시 한강을 바라보고 누워있다.

 

또한 이 시기에 만세운동과 일제 파출소를 습격한 아천동의 이강덕,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노동 출신 김규식 등 2인의 애국지사도 있다. 이 2인의 궤적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본고에서는 민족의 꽃 유관순 열사와 13도창의군 허위 의병장에 이어 3·1운동의 과정을 알아보고 민족대표 오세창(천도교), 한용운(불교), 박희도(기독교) 3인의 명암(明暗)을 살펴본다. 이번 글에서는 삼일운동의 발생과 민족대표를 소개하고 다음글에서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삼인의 명과 암을 소개한다.   

 

-3·1독립선언의 불씨는 민족자결주의와 무오독립선언, 2·8독립선언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외부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

-윌슨의 민족자결론 중

 

이글은 191818일 미국의 39대 윌슨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연두교서 <평화원칙 14> 조항 중 하나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론>이다. 이는 식민지 아래에 있었던 많은 나라에 희망을 주었고, 저항운동의 불씨를 피우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에 영향을 받아 이승만 등 미국의 이민자들은 독립을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이승만에게 윌슨은 프리스턴대학 은사이기도 하다.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게 할 것

-무오독립선언 중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와 연해주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독립운동가들은 191821<대한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이 선언서는 조소앙이 작성했으며 안창호·김좌진·신채호·박찬익 등 39명이 서명했고, 무력대항을 불사하겠다고 선포했다. 무오년(1918) 음력 11월에 완성되어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부른다.

 

 

▲ 1919년 2ㆍ8 독립선언을 주도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기념사진으로, 대표자 9인이 모두 출감한 후인 1920년 4월 찍었다. 가운데 줄 왼쪽 두번째부터 최팔용 윤창석 백관수 서춘 김도연 송계백. © 독립기념관제공

 

 

오늘의 정세는 우리 조선민족의 독립운동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며, 해외의 동포들도 이미 실행운동에 착수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마땅히 구체적 운동을 개시하여야 한다.”

-동경유학생들의 결의문 중

 

동경의 유학생도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을 통해 <민족자결주의>를 접했고, 191916일 동경 간다(神田)에 있는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회를 열고 조선(대한)의 독립을 결의했다.

 

이어 박팔용이 주창하고 이광수가 작성한 <2·8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발표했다.

 

28일 오전 10시 각국 대사·공사, 일본정부 요인, 귀족원·중의원 양원의원, 조선총독부, 신문사, 잡지사와 여러 학자에게 발송했다.

 

오후 2<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의 대표 11명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김도연이 결의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500여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 3대 독립선언서와 서명자     © 경기인터넷뉴스

 

 

만세운동이 끝날 무렵, 동경 경시청에서 달려온 경찰들에 의해 충돌을 했으며, 1월 중국으로 먼저 떠난 이광수를 제외한 10명의 대표는 물론 참가자 백여명이 일본 경찰에 연행됐다. 유학생들은 전원이 귀국할 것을 결의했다. 191928일부터 515일까지 유학생 359명이 일본을 떠났는데 이중 127명이 서울로 돌아왔다.

 

이들은 31일에 일어난 거족적이고 거국적인 독립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것이다.

 

-태화관 최남선, 탑골공원 정재용이 선언서 낭독

 

민족대표 33인은 31일 오후 2시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구 명월관)에서 모여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기로 했다. 기독교계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등 4명이 참가 하지 않아 29인이 모였다.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리고 자수했다. 헌병과 순사들이 이들을 남산 경무총감부로 연행했다.

 

저녁 무렵 길선주 등 4인도 자진 출두하므로 모두 경찰서에서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이 됐다. 33인은 태화관에 모이고 행사를 마친 후 자수한 이유를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방책이라 하나 달리 말하는 이들이 많다.

 

 

 

▲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탑골공원 부조와 당시를 재현하는 재현하는 정재용 선생과 태화관에서 낭독한 육당 최남선     © 한철수

 

 

오후 2시 탑골공원(탑동공원, 파고다공원)에 모인 군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민족대표 33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으로 올라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에 격앙된 수천 명의 학생과 군중들은 만세를 외치며 독립시위를 펼쳤다.

 

이날 군중은 두 갈래로 나뉘어 행진했다. 종로 보신각을 지나 남대문으로 매일신보사를 거쳐 대한문으로 도착했다. 군중은 대한문 앞에  멈춰 덕수궁 혼전(魂殿. 고종의 안치실)을 향해 절을 하고 인산을 보러 경향각처에 모인 이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었다.

 

성의 안팎에서 십 수만 명이 만세를 외쳤다. 시위군중은 공약 3장에서 밝힌 대로 질서를 유지했기 때문에, 단 한 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비폭력 시위였다.

 

하지만 일제는 기마병을 이끌고 제압에 나섰고 군중은 오후 6시쯤 자진해산을 했다. 주모자 13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이날 31일에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곳은 비단 서울만은 아니다. 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이북지방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시기 100만 명이 넘게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민족 대표 33인 이냐 50인 이냐

 

이날 독립선언서에 33명이 서명을 했다. 하지만 민족지도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이는 48명이다.

 

우선 33인은 어떻게 선정되었을까. 천도교·기독교·학생층의 개별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기관과 단체가 통합, 단일화되고, 불교측도 가담하자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의 인선을 하였다. <표참조>

 

 

종교

이름

출신지

신분

건국훈장

훈격

종교

이름

출신지

신분

건국훈장훈격

천도교

손병희

청원

3세교주

대한민국장

오화영

평산

목사

대통령장

권동진

괴산

도사

대통령장

최성모

해주

목사

대통령장

오세창

서울

도사

대통령장

이필주

서울

목사

대통령장

임예환

평양

도사

대통령장

김창준

강서

전도사

대통령장

나인협

성천

도사

대통령장

신석구

청원

목사

대통령장

홍기조

남포

도사

대통령장

박동완

포천

서기

대통령장

백준승

임실

도사

대통령장

신홍식

청주

목사

대통령장

양한묵

해남

도사

대통령장

양전백

선천

목사

대통령장

권병덕

청원

도사

대통령장

이명용

철산

장로

대통령장

김완규

서울

신자

대통령장

길선주

안주

목사

독립장

나용환

성천

도사

대통령장

유여대

의주

목사

대통령장

이종훈

경기광주

장로

대통령장

김병조

청주

목사

대통령장

홍병기

여주

장로

대통령장

정춘수

청원

목사

변절

이종일

태안

월보부장

대통령장

*김도태

정주

교사

독립장

최 린

함흥

교장

변절

*안세환

평원

총무

독립장

*박인호

예산

4세교주

독립장

*함태영

무산

조사

독립장

*김홍규

김제

신자

애국장

*김원벽

온율

학생

독립장

*노헌용

곡산

금융관장

-

*김세환

수원

학감

독립장

*이경섭

곡산

봉훈

독립장

일반

*임 규

익산

교사

애국장

*한병익

수안

신도

-

*송진우

담양

교장

독립장

불교

한용운

홍성

승려

대한민국장

*현상윤

정주

교사

-

백용성

장수

승려

대통령장

*최남선

서울

출판

변절

기독교

이승훈

정주

장로

대한민국장

*강기덕

원산

학생

독립장

박희도

해주

간사

변절

*정노식

김제

유학생

-

이갑성

대구

사무원

대통령장

*김지환

정주

정주

독립장

 

<삼일독립운동 민족대표 50인의 명단...표의 *는 추가17명 이름의 갈색은 변절자 4인>

 

 

서명한 33인은 천도교 손병희·권동진·오세창·염예환·나인협·홍기조·박준승·양한묵·권병덕·김완규·나용환·이종훈·홍병기·이종일·최린 등 15명이고 기독교(개신교) 이승훈·박희도·이갑성·오화영·최성모·이필주·김창준·신석구·박동완·신홍식·양전백·이명룡·길선주·유여대·김병조·정춘수 등 16명이고 불교 한용운·백용성 등 2명이다.

 

추가된 이는 천도교 박인호·김홍규·노헌용·이경섭·힌병익 등 5, 기독교 김도태·안세환·함태영·김원벽·김세환 등 5, 일반인 임규·송진우·현상윤·최남선·강기덕·정노식·김지환 등 7인 등 17인이 늘어 50인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추가된 17명은 일본 법정에서 3.1운동 관련으로 재판을 받았고, 1929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서 재판과정을 소개하면서 48명이라는 숫자로 알려졌다. 33인의 민족대표 가운데 31인에 같이 재판을 받은 최남선 등 17인을 더한 것이댜

 

 

▲ 1920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3.1 운동에 참가한 민족대표 48인의 사진     © 동아일보

 

  

이날 동아일보 기사와 사진에는 상하이로 망명한 김병조와 재판전 옥고로 순국한 양한묵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에 민족대표, 민족지도자, 3.1운동 지도자로 부르는 숫자도 33명, 48명 또는 50명이 존재하고 그들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이야기 망우리공원, 기미만세운동 민족대표 3인의 명()과 암()-2>

 

참고자료: 독립유공자공훈록 보훈청 홈페이지, 한국민족대백과사전(한중연), 위키백과, 그와 나 사이를 걷다(김영식. 2018. 호메로스), 국가지명위원회 홈페이지,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 동아일보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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