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포멀이 지배하는 사회

송영한 기자 | 기사입력 2015/11/28 [14:17]

[시론] 포멀이 지배하는 사회

송영한 기자 | 입력 : 2015/11/28 [14:17]

며칠 후 딸을 출가시킬 예정인 선배가 딸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평소 내 노래를 좋아하는 선배의 부탁이었지만, 나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노래를 전공했지만, 직업 연주인이 아니라서 거절한 것은 아니다. 내 노래를 사랑해 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결혼식이라 이름 붙인 축제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이기 때문에 그들만의 퍼포먼스가 돼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축제장에 단지 노래를 잘한다는 이유로 양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연주인이 나가서 축가를 부르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Formal)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던 날은 첫눈이 내리는 무척 추운 날씨였다. 이날 국회의사당 야외 영결식장에 조가를 부르기 위해 참여한 ‘구리시 소년소녀합창단’이 추위에 떨고 있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여기저기서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른들은 두꺼운 외투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있으면서 짧은 치마에 얇은 연주복을 입고 덜덜 떨고 있는 어린이들을 안쓰러워하는 여론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어른들의 배려 없음과 무분별함에 부끄러워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이에 대해 상주인 김현철 씨는 SNS를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상주가 사과했다는 것은 준비가 미흡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장례식에 흠결을 남겼다는 것이다.
 
국가가 주도해 치르는 국가장이라면 국가에서 보수를 받는 국립합창단이 조가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장례위원회가 왜 이들 대신 굳이 고인과 연고도 없는 어린이 합창단을 불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꼭 국립합창단이 아니더라도 고인이 졸업한 학교나 교회의 합창단이었더라면 아마도 더 의미 있는 행사가 됐을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공동묘지 근처에 살면서 맹자가 상두꾼 흉내를 내자 학교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것이 유명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다. 물론 어린이라고 해서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런 행사에는 어른들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Normal)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름조차 생경했을 이 어린이들이 고인의 업적인 민주화와 역사바로세우기를 얼마나 이해하고 평가하겠는가? 부득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복과 외투라도 입히고 손난로라도 주머니에 넣어 세웠어야 할 일이다.
 
무대는 포멀이 용인되는 곳이다. 그래서 연주인들은 추운 날씨에도 예쁘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 얇은 드레스와 연주복을 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에 책임을 지는 어른들의 세계다. 이날 추위에 떤 어린이들이 스스로 짧은 치마의 얇은 연주복을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만약 원했더라도 어른들이 말렸어야 할 일이었다. 
  
국가장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조차 감기가 걱정돼 행사장에 안 나온 마당에 일어난 이날 일은, 포멀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며 배려를 잃어버린 어른들의 무책임이다.
 
굳이 ‘어린이 헌장’을 들추지 않더라도 어린이는 어른들의 따듯한 사랑과 배려 안에서 어린이답게 자라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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