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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강순 수필집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

송영한 기자 | 입력 : 2014/10/25 [16:23]
▲수필가  이강순     © 경기인터넷뉴스
“책이 나왔어요...이게 뭐라고 몸과 맘이 몸살을 앓습니다.”

그에게 문자를 받은 것은 짙푸른 동해바다에 일엽편주로 떠있는 조그만 낚싯배에서 생애 최고의 일출을 보고 있을 때였다.

“연휴에 바다낚시나 갑시다”라는 후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올 여름 휴가다운 휴가를 못갔다”는 핑계로 “그러마”고 했지만 감기로 몸이 쇠약해 있던 때라 안하던 뱃멀미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몸살 앓는 사람이 몸살 앓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셈이다.

간신히 “산고 없이 태어나는 게 있던가요?” 하며 겉치레 인사를 보냈는데 “휴일이 끝나는 대로 제일 먼저 책을 들고 오겠다”고 했다.

연휴 후 첫 출근 날, 그는 정말로 아픈 몸을 이끌고 어김없이 책을 들고 나타났다.  

책을 먼저 건낸다는 것은 서평이든 홍보기사든 글을 써달라는 간접적인 압력이다.

같이 글을 쓰는 처지지만 주위에 내 노라는 문필가들을 재껴 놓고 펙트를 육하원칙이라는 역삼각형 빵틀에 넣어서 ‘뚝딱 뚝딱’ 생산하는 기자 나부랭이한테 서평을 해달라는 무리한 부탁은 아닐 것이고, 더구나 홍보기사를 부탁할 만큼 낯이 두꺼운 그도 아니다.

그저 글을 읽고 감상문 정도나 써주면 좋겠다는 뜻이었을 것이고, 나 역시 학교 다닐 때처럼 독후감이나 써줘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받아 들었다.

예전에 로컬신문에 몸담고 있을 때 객원기자로 있던 그에게 몇 번인가 글 독촉했던 빚이 이자를 쳐서 돌아온 셈이었다.

▲     © 경기인터넷뉴스

이런 연유로 손에 잡은 책이 이강순 수필가의 ‘살구나무는 잘 있는지요’라는 수필집(해드림출판사)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글에서 표현 했다시피 이강순 작가의 촌스러움은 가지고 있는 촌스러움을 굳이 감추지 않는 세련된(?) 촌스러움이다.

대처로 나가 공부하겠노라는 당찬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섬진강 어귀 어느 마을에선가 쇠재골댁으로 불리며 그의 어머니처럼 살았을 이강순 작가...

경상도 억양에 전라도 사투리를 담아내는 이해 못할 그 어색함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으며 ‘경전선’이 서울에서 출발하는 기찻길이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기찻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작가는 낡은 사진첩을 뒤척이며 샛노랗게 변해버린 흑백 사진 속에서 엄마 아빠를 찾아내는 어린아이처럼 가슴에 묻고 살았던 고향에 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내 놓는가하면, 사랑하는 이를 만난 이야기며, 이미 속물(?)이 되어버려 강남 여느 학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고3 엄마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늘어놓고 있다. 
 
마치 흑백 필름이 돌 듯 책장이 넘어 갈 때마다 잊어버린 고향, 잊어버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무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보릿단 썩는 냄새며 쇠죽 끓이는 냄새며 누룩이 뜨는 냄새 그리고 구리한 닭똥 냄새와 외양간의 쇠똥냄새까지 갖가지 고향의 냄새들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다. 

마루에 똥을 갈겨 대며 어린 그를 유난히 괴롭혔던 닭들과 대처로 유학 떠난 주인의 자녀를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암소도 이 흑백영화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수구초심이라 했던가? 작가는 연어가 수만리를 돌고 돌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듯, 천하다며 버렸던 고향의 들길을 걸으며 수채화 같은 가을동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자신의 입으로 ‘천상 약골’이라고 하면서도 그는 여기저기를 잘도 쏘다닌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능내리 일대를 뒤져 애기괭이눈을 꼭 봐야하고, 겨울을 만끽하기 위해 눈 쌓인 남한강 강가를.. 가을을 보내기 위해 대빗질한 수종사 마당에 떨어진 은행잎을 주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이기에 책에 깨소금처럼 묻어 있는 사진들도 모두 그가 발품 팔아 찍은 작품이다.

굳이 이강순 작가가 아니라도 대한민국 보통 주부들은 누구나 슈베르트의 연가곡을 들으며 꿈을 키우던 감성 있는 소녀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아직도 내가 변치 않고 살아있다”고 몸으로 부딪히며, 도망하려는 추억들을 부여잡고 자신이 걸어 온 족적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부는 흔치 않다.   
  
작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 “빈혈을 앓는 내 상태에 맞는 만큼 보폭을 유지하며 산을 오르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던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무서운 절제력의 독백이다.
  
목숨을 건 전쟁터를 수 없이 거치며 일본의 평화를 이룩한 그처럼, 작가도 수없는 자신과의 싸움 끝에 그 같은 삶의 방식을 터득했을 게다.

이 책은 마치 화려한 색채가 없이 농담(濃淡)만으로만 기품을 유지하는 수묵화 같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40년 전, 닭장 옆에 있던 개살구나무를 도끼로 찍어 불 싸지르고 떠난 뒤 까맣게 잊어버렸던 고향을 기억해냈다.

내 편두엽 어딘가에 씨앗으로 박혀있던 고향이란 단어를 꺼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살구나무에게 조차 안부를 전하고 소박한 이중섭의 은종이 그림 앞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그리워하는 작가처럼 나도 이제 가끔씩 아련했던 추억의 포로가 되고 싶다.

▲     © 경기인터넷뉴스

<이강순 수필가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늘 있었다.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현실은 이를 비켜 가, 다른 길로만 달음질하였다.

십여 년 동안 병원에서 의료보험 실무 일을 하던 저자는, 이후 도서관과 문화센터에서 어린이 독서지도와 중·고등 논술 그룹지도를 했다.

2002년 국민카드사이버문학상 공모전에 수필이 당선 되면서 글을 쓸 기회를 얻었지만 치열하게 쓰지는 못했다. 늘 갈급해 하던 저자는, 끝내 회피하고 밀쳐두었던 것을 붙잡고 돌아서,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저자에게는‘그래, 힐링이 살아갈 힘이다’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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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인 2014/10/27 [10:31] 수정 | 삭제
  • 저자 보다 저자를 더 잘 표현한 독자의 글 한편! 멋집니다. 이강순 작가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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